읽은 날짜 :'18년 11월 27일
지은 사람 : 이어령
옮긴 사람 :
출판한 곳 : 문학사상사
내용 요약 : 1962년, 그러니까 저자가 삼십대 초에 <경향신문>에 칼럼으로 연재했던 글을 취합하여 책으로
출간,그 후 2002년에 개정판으로 나온 책임. 이 책에는 "그 후 40년"이라는 제목으로 책의 권말에 문답
형식으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서 그당시 개재된 내용과 약 40년이 지난 지금에 한국 전통문화도
달라져서 글로벌문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고와 삶은 어디까지 변화했고 앞으로 어떻게 변천
되어갈 것인지, 그리고 그 새롭게 다가오는 문명을 우리 본래의 문화와 조화롭게 융합시켜 진정한 사람
다운 내음이 물씬나는 풍요롭고 행복한 미래의 우리문화를 만들어가는데 필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우리 한국인의 삶의 정서와 생활방식 등 우리의 전통문화를 외래문화와 견주어 보고(저자는 정자亭子
에 서서 보고 느낀다고 표현) 그 문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과거 한국의 특수성(환희보다는 고난의 삶)으로
인한 삶에 여유와 마음에 정서가 부족한 부분은 그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나 하
는 시각으로 보고 분석한 것을 위트가 넘치는 글로 표현하였다 (문체의 연금술사라 일컫는 천재적인 글)
끄적 끄적 : '문학박사'이자 우리나라 초대 문화부장관을 거쳐, 미래 문화번영을 위한 '새 천년 준비위원회
위원장, 88올림픽준비위원장 등 우리나라 문화 발전과 홍보에 큰 인물인 저자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또는 '문학천재' 등 여러 닉네임이 불려지곤 했는데, 그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저자가
남긴 글과 공로를 보면 알수가 있다. 이 책(흙 속에 저 바람 속에)도 저자 나이 이십대 후 반부터 쓰기시
작한 글인데, 거의 55년이 지난 현재에도 시대적 어색함이나 문장 내용면에서도 거부감 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저자가 소개하는 우리 전통문화의 희노애락이 담긴 글에 공감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 책 '풀 이름 꽃 이름' '눈치로 산다' '사람 살려와 헬프 미' 를 읽는 중에 히죽거리
며 혼자서 많이도 웃었다. 평범치 않는 통찰력과 넘치는 해학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훗날 우리 어른
들의 옛 삶의 문화가 잊혀질만 하면 또 읽고 읽어 지나온 문화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변해가는 문화의
긍정과 부정을 가릴 수 있는 판단에 조금이나마 참고가 된다면 더욱 좋겠다. 또한 책을 통하여 우리내
과거 풍속과 문화에서 유래된 얘기를 듣다보면 소리없는 웃음과 미소를 짓게 될것이다 (나처럼..*^^*)
내용 중에 : 한국인의 유흥은 곧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술집이고 잔칫집이고 어디에서든 사람들이 모여서
논다 싶으면 으레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겉으로 보기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관
찰하면 한국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진경이다. 노래라고 하는 것은 직업 가수가 아닌
이상 즉흥적으로 부르게 마련이다. 더구나 여러 사람이 모여 놀 때 흥에 겨우면 절로 합창이 터져나
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개구리와 닮은 데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그렇지를 못하다. 이상스럽게도 노래를 권유한다. 남에게 노래를 시키는 것이 유흥 석상의 한 에티켓
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시키지도 않는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멋쩍은 짓에 속한다. 노래를 부르는
수속과 절차가 그렇게 간단치가 않은 것이다. 우선 민주적인 방법으로 노래를 부를 사람이
지목된다. 말하자면 좌중의 여론에 의해서 가창자의 순서가 차례로 결정되어간다. 소위 겸양의 미덕
은 그런 자리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여러 사람들이 합세하여 노래를
시키려고 하면 당사자는 또한 완강히 사양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몇 번을 빼다가 이윽고 목청을
가다듬어 노래 한가락을 부른다. 그러나 한층 더 괴이한 것은, 그렇게도 노래를 시키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막상 노래가 시작되면 별로 경청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래를 시켜놓고는 옆의 사람과
또 술잔을 권하고 사양하느라고 국부전을 벌인다. 노래가 끝났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좌중의 사람
들은 가창자에게 관심을 보여 박수를 치고 앙코르를 청하는 것이다. 문제는 '노래'보다도
노래를 시키는 데에 더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가창자 역시 정말 노래 부르기 싫어서 빼는 것은 아
니다. 그 증거로서 만약 한 번 사양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로 노래의 화살을 돌려보아라. 아니 숫
제 노래를 부르라고 아무도 권유하지 않았다고 해보아라. 그 사람은 그날의 유흥이야말로 가장 쓸쓸
하고 기분 나쁜 자리였다고 할 것이다. 불쾌감을 가지리라. 시무룩하게 앉아 언짢은 표정을 하다가
쓸쓸히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 노래는 누구의 노래인가? 남이 시켜서 억지로 부르는 노래도 아니며 부르고 싶어서
절로 부르는 노래도 아니다. 노래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노래를 권유한한다는 것은 감정을
강요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그 권유를 받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 감정까지도 자연
발생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율도 아니고 자율도 아닌 그노래를 모르고서는 한국인을 이해
할 수가 없다. 당신이 만약 외국인이라면, 절대로 한국인 '노'라고 말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예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몇 번은 거절
해야 되는 것이므로 당신은 우선 몇 번이나 그렇게 권유해 보아야 한다.
- 책 153쪽 내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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