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동안 ♣

"외국어 달인? 옹알이처럼 떠드세요"

달컴이 2015. 9. 5. 23:51

 

 

 

“외국어를 배우지 않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낭비다. 마치 바닷가에서 싱싱한 성게가 널려 있는데도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쳐다보기만 하는 것과 같다. 언어는 칼과 지식의 종합체다. 언어를 도구로 사용해 문화를 감싸고 있는 뾰족한 가시와 단단한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면 환상적인 속살과 마주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 공부를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괴테는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나라 말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몇 가지 언어를 할 수 있으면 인생이 다채로워진다. 초고속 무선광대역 네트워크가 깔려 있고 수많은 사이트로 가득 채워진 인터넷 세상에서 한 군데에만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

외국어를 알면 그만큼 삶이 다채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 누가 모를까.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이런 말을 자신있게 늘어놓는 사람은 조금 얄밉기까지 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만의 NGO활동가 추스잉(褚士瑩). 그는 10개 언어를 안다. 중국어는 물론 영어, 일본어, 한국어, 태국어, 위구르어, 광둥어, 말레이시아어, 미얀마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까지 동서를 오간다.

이 중에는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도, 현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치는 말도 있다. 그래도 쉴 새 없이 배우고 말한다. 그가 그동안 익혀온 다양한 외국어 학습의 비결을 담은 책이 최근 ‘그래서 나는 오늘 외국어를 시작했다’(추수밭)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2013년 대만에서 ‘게이쯔지더스탕와이위커(給自己的10堂外語課, 나를 위한 10번의 외국어 수업)’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이다.

대만에 있는 그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 외국어 실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지요?

학창 시절에 싱가포르, 이집트, 미국에서 공부 했고 나중에 태국에서 은퇴를 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방콕의 어학 학교에서도 태국어를 공[저자 인터뷰] "외국어 달인? 옹알이처럼 떠드세요"부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위주로 사용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국제 NGO에서 근무하며 시골 마을에서 개발 업무를 하면서 업무상의 필요로 인해 3개월 내에 현지의 새로운 소수민족 언어를 익혀야 하는 일이 잦았어요. 그래서 위구르어부터 미얀마 샨주(Shan State)의 파이어(擺夷語)까지 배웠죠.

합치면 10여 종의 언어가 되지만, 그 모든 언어에 ‘능통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제 필요를 충족시킬만큼은 됩니다.

언어는 많이 배운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요. 필요도 없는데 어학 자격시험만을 위해, 혹은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태국에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입니다. 노점상들이 처음에는 제게 영어나 일본어로 호객 행위를 했어요. 하지만 제가 얼마간 태국어를 배우고 난 후에는 거리의 사람들이 제게 태국어로 말을 걸더군요.

한 번은 어떤 단어가 태국어로 생각이 안 나 영어가 튀어나왔어요. 그러자 태국 어르신이 화를 내면서 이래요. “요즘 젊은 것들은 왜 굳이 태국어에 영어를 섞어 쓰는 거야! 돼먹지 못하게!”

‘아! 드디어 됐구나!’ 싶더군요. 현지인과 생활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언어에 ‘능통’할 필요는 없습니다.

- 단기간에 외국어를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는 비결이 뭐지요?

옹알옹알 말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아기들은 한 단어를 익히면 소중한 보물을 얻기라도 한 듯이 그 단어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최대한 그 단어를 사용하지요. 문법이나 단어, 문형을 완벽히 따진 후에야 입을 열고 첫 마디를 떼는 일은 절대 없지요.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언어 습득’의 상태입니다.

NGO의 일선에서 일하다 보니, 저는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마다 제 자신이 생활과 업무에서 어떤 어휘와 문형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압니다. 그래서 교과서 진도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요. 제 경우엔 “이것은 연필입니다”를 어떻게 말하는지를 아는 것보다 “출혈성 뎅기열이요? 제가 죽나요?”를 어떻게 말하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죠.

저는 업무와 생활에서 만날 법한 실제 상황을 떠올려서 익혀야 할 단어, 문법과 문형을 먼저 정리합니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에게 제가 필요한 내용대로 수업을 해 달라고 말씀드려요.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식으로 그 안에서 이리저리 응용을 해봅니다.

그런 식으로 꾸준히 하다보면, 교과서 진도에 의존했을 때는 10년이 지나도 익히지 못했을 매우 유용한 내용들을 배우게 됩니다. 각자 언어를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내게 ‘필요한’ 수준에 금방 도달할 수 있습니다.

- 시간은 얼마나 투자해야 할까요?

사람마다 학습 능력이 다르겠지요. 제 경험을 살펴보면 하루 두 시간씩 공부하면 100일 후에는 어느 정도 기초를 다질 수 있습니다. 영국 런던대학교의 소아즈(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에서 오래 강의한 교수이기도 한 제 미얀마어 선생님은 집중반을 개설해서 외교 인력과 국제 NGO 활동가들을 교육하면서 수업 시간을 최대 하루 두 시간으로 잡으셨어요.

학생들은 매일 수업 진도를 따라가느라 정신 없었죠. 더 욕심을 내서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주 5일 공부하는 식으로 한다면 저한테는 벅찹니다. 하루에 최소 여덟 시간은 어학을 연습해야 하는데, 이러면 밥 먹고 잠 자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지요.

중요한 건 날마다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겁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유산소운동 DVD 한 장, 또는 운동해설서만 있어도 혼자 다이어트에 성공합니다. 그렇지만 게으른 사람은 헬스클럽에 다니든 개인 트레이너를 두든 다이어트에 실패합니다. 날마다 꾸준히 실천하지 않으면 운동이 효과를 내지 못하듯, 외국어 학습도 할 때는 매일 꾸준히 해야 합니다.

- 많은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잊어버리지 않나요?

저는 ‘언어 습득(language acquisition)’과 ‘언어 학습(language learning)’을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언어 습득이란, 나 자신을 신생아처럼 어떤 외국어의 환경 속에 처하도록 해서 익히는 방법입니다. 경청하고, 모방하고, 실수도 해가면서 외국어를 배우는 거죠.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자전거는 한 번 배워놓으면 오래 타지 않았더라도 일단 자전거에 오르면 몸이 금세 타는 법을 기억해 냅니다.

이런 ‘언어 습득’의 방식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내용이나 교재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속도가 느리고 학습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고 나면 오래 갈 수 있는 능력으로 바뀝니다.

반면에 ‘언어 학습’은 교재를 가지고 공부하는 방식입니다. 수업을 통한 언어 익히기입니다. 이 경우에는 단기간에 집중해서 듣기와 읽기, 말하기, 쓰기 수준을 크게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을 중단하면 금세 원점으로 돌아가는 위험이 있습니다.

 추스잉은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부터 익히고 단어를 바꿔 적용하며 확장해 가면 자신만의 최고 어학 교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 대만 타이탄(大田) 출판 제공
추스잉은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부터 익히고 단어를 바꿔 적용하며 확장해 가면 자신만의 최고 어학 교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 대만 타이탄(大田) 출판 제공

- 독학으로만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나요?

외국어를 배우려는 성인이라면 자신의 목적에 따라 필요한 어휘와 문형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행에 필요한 것과 업무에 필요한 것을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자기 필요에 맞게 자신만의 실용 외국어 교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고혈압을 앓은 만성질환자가 이민 갈 때 가장 필요한 말은 뭘까요? ‘저는 한국에 있을 때 고혈압을 앓았습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 식후에 한 번씩 A약과 B약을 복용한 지가 2년입니다’, ‘어제 하루 동안만 아침, 점심, 저녁에 한 번씩 설사를 세 번이나 했습니다’, ‘저는 항생제 알레르기가 있습니다’처럼 의사에게 설명해야 하는 중요한 정보들을 정리할 수 있겠죠.

여기서 세 가지 시제(현재형, 현재진행형, 과거형), 세 가지 시간(아침, 점심, 저녁), 먹는 것과 관계된 세 가지 중요한 동사(약을 ‘복용하다’, 밥을 ‘먹다’, 물약을 ‘마시다’), 전치사(식사 ‘전에’, 식사 ‘후에’) 그리고 여러 고유명사(한국, 고혈압, A약, B약, 설사하다, 항생제, 알레르기)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단어만 몇 개 바꿔 적용하면 다른 상황에서도 유용한 말을 익힐 수 있습니다. ‘저는 유행병에 걸렸습니다’, ‘매년 고정적으로 두 차례, 연초와 연중에 한 번씩 해외에 나간 지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한 번씩 유럽만 네 번을 갔습니다’, ‘저는 매일 돈 벌 생각만 하는 사람에게 알레르기가 있습니다’와 같은 표현으로 바꿔볼 수 있는 거죠.

같은 문형을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만들고 무한히 확장해서 자신만의 최고 어학 교재를 설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 외국어를 익힐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정작 어려운 것은 언어 자체가 아니라 언어의 논리입니다. 예를 들어 한 한국 학생이 미국에 유학을 갔다고 칩시다. 토론을 하는데 한국말을 그대로 영어로 직역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다른 미국 학생은 초점이 무엇인지 잘 모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언어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어는 ‘앞쪽에 무게가 있는’ 언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결론은 항상 첫 세 마디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한국어는 대부분의 아시아 언어와 비슷하게 ‘뒤쪽에 무게가 있는’ 언어지요.

앞에서는 여러 인과관계를 늘어놓고 마지막에 가야 결론을 말하죠. 따라서 단순하게 언어만 바꾸고 머릿속 언어의 논리를 전환하지 못한다면 토플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 혼자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는 어떤 것이 있나요?

한 번에 두 가지 언어를 공부하려 했던 게 제일 큰 실수였습니다. 대학 시절 일본어를 배운 뒤에 욕심을 내서 한국어와 광둥어를 동시에 공부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론 두 언어 다 잘 안됐습니다. 광둥어가 중국어의 방언 중 하나라서 대부분의 발음은 현대 중국 표준어와 비슷해 보였거든요. 하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국어나 일본어 역시 한자 발음은 중국어와 비슷했지만 한자가 아닌 부분은 전혀 달랐고요. 그러면서 언어가 완전히 뒤섞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어 ‘앉다(坐)’라는 동사를 한국에서는 ‘좌’라고 말하는데, 일본어로는 ‘스와루’, 광둥어로는 ‘초’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이걸 함께 공부하다보니 한국어로 읽어야 할 때 ‘초’가 튀어나오고, 광둥어로 읽어야 할 때 ‘좌’가 나오는 식이었죠. 결국 이 두 개 언어는 식당에서 겨우 음식을 주문하고 글자를 읽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처럼 한번에 여러 언어를 공부할 경우에는 서로 교란이 일어납니다.

동일한 어족(language family)에 속하는 외국어가 구조는 비슷해도 문법이 서로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테면 일본어와 한국어 그리고 미얀마어는 문법 구조가 상당히 흡사합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중국어와 광둥어, 또는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적으로는 매우 비슷합니다. 하지만 언어 간에 여러 미세한 차이가 있고 문법적인 예외도 다양합니다.

심지어 같은 언어라고 해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일어의 경우 독일어의 표준 독일어와 오스트리아의 독일어, 스위스의 독일어가 다릅니다. 서로 어감이 다르고 외래어를 사용하는 습관이나 말투도 달라서 한꺼번에 배우면 굉장한 혼란이 생깁니다.

한국어를 갓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표준어와 동시에 제주도 사투리까지 익힌다고 칩시다. 한 문장에 표준어와 사투리를 전부 뒤섞어 넣으면 본인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듣는 사람은 굉장히 고달프지 않겠어요?

한 번에 한 가지 언어만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일정 수준이 된 후에 다른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두 언어를 한꺼번에 익히는 것보다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 당신은 책에서 “성인이 더 외국어를 익히기 쉽다”고 했습니다. 보통 말은 어릴 때 배우는 게 좋다고들 하지 않나요?

보통 사람들은 외국어는 일찍 배울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작정 조기 교육이 좋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100% 영어 수업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보셨나요. 이 중에는 한국어도 안 되고 영어도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보셨을 거예요. 문장에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이고, 문법도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죠.

부모들은 그런 조기 외국어 학교에 보낸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런 뒤죽박죽 증상은 심각한 경고 신호입니다. 그 뒤로 어느 한 가지 말도 온전히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비싼 사립 국제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도 두 언어 모두 제대로 안 되는 비참한 상태를 이어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인은 외국어에 대한 학습 동기가 뚜렷합니다. 더 이상 부모나 학교에 떠밀려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잘 압니다. 이미 한 가지 외국어나 사투리를 성공적으로 익힌 경험도 있을 테고요. 두 번째, 세 번째 외국어를 배울 때는 앞서 성공했던 경험을 의식적으로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도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추스잉은 “언어는 불투명한 유리 같아서 윤곽을 가늠할 수 없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열쇠가 된다”고 말했다. / ⓒ최광렬, 추수밭 제공
추스잉은 “언어는 불투명한 유리 같아서 윤곽을 가늠할 수 없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열쇠가 된다”고 말했다. / ⓒ최광렬, 추수밭 제공

- 그렇게 애써 외국어를 많이 알면 뭐가 좋은가요?

세상에는 평행하는 여러 개의 소우주가 있습니다. 언어와 종교, 인종, 지리적 위치, 정치적 입장 등이 다르기 때문에 그 세상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죠. 그런 상황에서 언어는 다른 평행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가 됩니다.

마치 불투명한 유리 같아서 윤곽을 가늠할 수 없었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그 나라의 언어에 담긴 논리를 보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왜 비슷한 행동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생수병을 들고 다니는 독일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안전 기준에 맞는 수돗물을 바로 먹지 않고,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들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됐죠. 그런데 독일어에선 수돗물이 Leitungswasser로, 한국어의 ‘수돗물'처럼 '수도'에서 나오는 물이라고 직역한 것을 알고서부터 번뜩 깨달았어요.

실제로는 수질이 아무리 깨끗해도, 어감상 땅속에서 녹이 슬거나 갈라져서 불결한 송수관의 모습이 상상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영어 ‘tap water’에서 느껴지는 반짝반짝한 스테인리스 수도꼭지가 떠오르는 게 아니고요.

제가 태어난 대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일본식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은 일본어의 표현을 계속 사용해서 역시 ‘수돗물’이라고 하시거든요. 가정에서 ‘수돗물’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면 집의 수도꼭지에 가장 선진화된 정수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팔팔 끊인 물을 마시고 싶을 겁니다.

이렇게 조금은 비이성적인 행동들처럼, 언어를 이해한 후에야 답안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죠. 외국어를 공부하면 자신의 모국어 환경을 돌아보고 그 동안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언어 논리들을 더 많이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 지금 공부하고 있는 언어가 있나요? 앞으로 추가로 배우고 싶은 언어는?

지금은 계속 미얀마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시민 사회(Civil Society) 교육 등 때문에 종종 일선의 풀뿌리 NGO 조직들을 접하거든요. 이 일을 잘 하려면 언어의 힘을 빌려서 서로의 마음속 거리감을 더 좁혀야 합니다.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언어는 베를린 사람들의 독일어와 미얀마 북부 카친주(Kachin State)의 경파어(景頗語)입니다.

- 외국어 공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끝으로 한마디 더한다면?

한 가지 외국어를 제대로 완벽하게 익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공부한 후에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옹알이를 배우는 아이들을 본받아서 한 글자를 배울 때마다 용감하게 한 글자씩 사용해 보세요. 배운 만큼 쓰는 것이 인류 문명의 잔치인 언어를 누리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 추스잉이 추천하는 단어카드 활용법

단어카드 앞면에는 단어나 문장을, 뒷면에는 그 단어와 문장의 뜻을 손으로 쓴다. 뒷면의 여백에는 발음이 비슷해서 헷갈리는 글자, 관련 단어, 반대말, 유용한 문장 등을 기록한다. 그리고 아래의 기준에 따라 세 묶음으로 분류한다.

① 숫자, 인삿말 같은 기본적이며 간단한 어휘
② 여러 번 암기해도 자꾸 잊어버리는 단어나 문장
③ 새로운 어휘, 어렵지만 중요한 숙어, 완전히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은 문법 규칙

세 묶음의 단어카드를 외출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마음 상태나 집중력에 따라 한 묶음을 골라 읽으며 익힌다.

첫 묶음은 대부분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 익히는 것이므로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실력이 쌓이면 두 번째 묶음에서 익숙해진 단어를 첫 번째 묶음으로 옮긴다. 첫 번째 묶음에서도 더 이상 잊어버릴 염려가 없는 단어들은 ‘은퇴’시켜 서랍 속에 넣는다. 이 단어들은 ‘0번째 묶음’이 된다.

이 단어카드를 버려서는 안 된다. 몇 년 동안 그 언어를 사용하지 않다가 갑자기 사용할 일이 생기면, 서랍 속의 ‘0번째 묶음’부터 꺼내 복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 단기 해외연수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법

① 혼자 공부하러 가서 현지인 친구를 사귄다. 어울려 지낼 친구가 없으므로 모국어를 쓰지 않게 된다.
② 홈스테이를 한다. 그래야 억지로라도 하루 종일 그 가정의 가족들과 내가 배우고 싶은 언어로 일상 대화를 나눌 수 있다.
③ 1대1로 배운다. 다른 사람과 한 교실에서 함께 수업 받는 방식은 시간 낭비다.
④ 현지 언어만 사용한다. 외국에 갔을 때는 같은 나라 사람과 대화할 때도 현지 언어만 사용한다.
⑤ 현지 기사를 읽고 들으며, 현지 젊은이의 유행어와 핫이슈에 관심을 가진다. 매일 현지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들으며 익힌다. 현지인들과 나누는 대화가 훨씬 재미있어진다.
⑥ 책을 읽는다.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쉬운 책을 골라 천천히 읽는다. 모르는 단어는 단어카드에 적는다.
⑦ 현지 문화에 관심을 갖는다. 현지 문화를 볼 수 있는 공연이나 명절 행사에 참가한다.
⑧ 정확하고 멋진 발음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 몇 문장이라도 현지인처럼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⑨ 백지 단어카드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새로운 단어는 직접 듣거나 사용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곧장 적어놓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 추스잉(褚士瑩)

[저자 인터뷰] "외국어 달인? 옹알이처럼 떠드세요"대만 가오슝(高雄)에서 태어난 NGO 활동가. 이집트 AUC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학을 공부했다. 국제금융 전문 감찰기관인 BIC의 미얀마 연락책임자, 영국 환경컨설팅업체 에코 포지티브Eco Positive와 미국 그린에너지업체 KPC의 아시아 파트너로 일했다. 유엔 CDM프로젝트의 일환인 르완다 바이오에너지농장 설립에 참여했다. 지금은 대만에서 이민, 교육,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적장애인 가족 후원 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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