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마흔네 살 중년의 사내가 중국 선전에서 친구 5명과 자본금 2만위안(약 340만원)으로 작은 무역회사를 창업한다. 홍콩 회사에서 소형 전화교환기를 떼어다 중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팔던 작은 대리점은 30여 년 뒤 직원 19만4000명을 거느린 글로벌 통신장비 회사로 성장한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5세대 통신장비를 개발해 `5G 시대`를 2~3년 앞당겼고, 전 세계 정부가 SOS를 보낼 만큼 글로벌 통신망을 좌우하는 기업이 됐다.
런정페이 회장과 그가 세운 제국 `화웨이` 이야기다.
올해 77세인 런 회장은 70세가 될 때까지 매년 4개월 이상을 비행기에서 보냈다. "어떻게 30년 만에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30년이 아니라 60여 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매일 8×2시간씩 일하거든요"라고 답하곤 했다. 기세등등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년간 내내 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며 전 세계 동맹국들에 `화웨이 아웃`을 외쳤지만 런 회장은 자신만만했다. 그 자신감은 화웨이가 30년 이상 견지해온 지독한 `분투(奮鬪) 정신`에서 나왔다. 중국의 작은 민영기업은 어떻게 30여 년 만에 세계 1위 기업이 됐을까. 베일에 싸여 있던 화웨이의 조직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책 두 권이 매일경제신문사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30년간 런 회장의 어록을 모은 `분투`와 톈타오(田濤) 중국 항저우 저장대 루이화 혁신연구소 공동소장(화웨이 국제자문위원회 회원), 우춘보(吳春波) 중국 인민대 행정대학원 인적자원 연구소 학과장이 쓴 `반드시 겨울은 온다-화웨이 철학`이다. `분투`가 내부자의 눈으로 본 화웨이의 교과서라면, `반드시 겨울은 온다`는 외부인의 시각에서 17년간 화웨이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두 책을 함께 읽으면 화웨이가 어떤 기업인지, 런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중국적이지도 서양적이지도 않은, 너무나 중국적이면서 너무나 서양적인, 그래서 경영학자들이 `전혀 다른 조직동물`이라고 부르는 화웨이의 실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에 따르면 화웨이 직원들은 `하느님`을 섬기며 그야말로 죽도록 일한다. 이들이 말하는 하느님은 전 세계 700여 개 통신기업과 60억명의 소비자다. `화웨이인의 아편은 고객`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나온다. 1995년부터 중국 인민대의 젊은 학자들을 초빙하고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만든 `화웨이 기본법` 첫머리는 `고객의 꿈을 실현한다`로 시작한다. 화웨이 직원들은 오로지 고객을 위해 수십 t의 설비 부품을 비행기, 배, 손수레, 당나귀에 싣고 지구의 절반 이상을 누볐다.
책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생각은 `화웨이는 정말 지독하게 일한다`는 것이다. 세계 1위로 올라선 지금은 어쩌면 꽃피는 봄날일 테지만, 화웨이는 `반드시 겨울이 온다`는 생각으로 고삐를 죈다. 이런 화웨이 정신의 비결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고객 중심, 분투하는 자, 오랜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분투를 존중하는 문화의 힘`이다.
서구나 요즘 한국 기업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지옥(런 회장의 표현)` 같은 근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확실한 보상`이 있다. 런 회장은 98.6% 지분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큰 공을 세운 직원에게는 파격적이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 엄청난 성과급을 지급한다. 한 화웨이 운영상은 "우리는 쌀밥 한 그릇이면 족했는데 사장님은 우리에게 쌀 열 말을 줬고, 성대한 식사를 준비하니 골드바 10개를 줬다"고 회고한다.
저자들은 은연중에 런 회장을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에 비견한다. 모두 회사 관계자들이 쓴 책인 만큼 화웨이의 좋은 점을 주로 다뤘다는 점은 감안하고 볼 부분이다. 그러나 `분투`를 책임 편집한 황웨이웨이 화웨이 고문이 밝혔듯, 회사는 가장 잘나가는 지금을 경계하면서 자신들을 비판해달라고 이 책을 펴냈다.
두 책을 모두 읽는다면 `반드시 겨울은 온다`를 먼저 읽고 `분투`를 읽기를 권한다. `반드시 겨울은 온다`의 원제는 `다음에 쓰러지는 건 화웨이가 될까?`이다. 이런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들이 보면 페이지마다 모골이 송연해질 책이다
출처 : 매일경제'200208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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