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읽고 ♣

AI시대는 `일하는 투명인간`을 양산한다

달컴이 2019. 8. 17. 22:57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있다. 구글에서 경제 뉴스나 류현진의 경기 결과를 검색할 때 광고나 당황스러운 사이트가 뜨지 않는 이유는 뭘까. 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서 폭력이나 성적인 이미지, 혐오 발언이 걸러지고 신뢰도 높은 피드가 올라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직 정보기술(IT)의 대단한 능력이 검색 결과를 제공해서가 아니다. 뒤에 있는 누군가의 노동 때문이다.

얼핏 자동화된 것처럼 보이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람들과 소프트웨어는 함께 일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실수하거나 맡은 일을 완수하지 못하면 기업은 사람에게 맡겨 조용히 그 일을 끝낸다. 이런 새로운 `디지털 생산라인`은 광범위하게 분산된 노동자의 힘을 종합하고, 제품이 아니라 프로젝트 일부분을 수송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수많은 경제 부문에서 운영된다. 
`고스트워크(Ghost work)`는 AI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수백만 명의 `일하는 투명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AI 시대가 일자리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소멸시키는 직업 유형이 새로이 대두되고 있다는 경고를 던지는 것이다. 인류학자이자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뉴잉글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메리 그레이와 컴퓨터공학자이자 마이크로소프트 AI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시다스 수리가 공저한 책이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긱(gig) 경제`에서 온라인으로 사고파는 노동의 실체다. 퓨리서치센터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약 2000만명이 온라인으로 일을 얻었다. 우버·캐털런트·팝엑스퍼트·업워크와 같은 온디맨드 직업 플랫폼을 거쳐 진행되는 업무는 2025년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인 2조7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2030년대 미국 일자리의 38%가 해체되고 준자동화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조앤은 휴스턴에서 81세 어머니와 살며 일한다. 간호를 위해 어머니 곁을 지키면서 조앤은 엠터크(아마존 미케니컬 터크)로 일하기 시작했다. 아마존닷컴이 주는 일거리로, 그는 사람들이 올린 역겨운 사진을 일일이 골라내 `성인 등급`으로 솎아내는 일을 한다. 하루 평균 10시간 일하고 40달러를 번다. 
인도 벵갈루루에 사는 칼라도 조앤과 비슷하다. 집에서 이미지와 단어에 태그(tag) 다는 일을 한다. 두 아이를 키우며 주당 15시간 일하는 칼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력 조달 플랫폼 UHRS에서 성실하게 일감을 찾아낸다. 이들의 삶은 온라인 시대의 `인형 눈 붙이기`와 다름없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트위터 같은 기업은 안전하지 않은 콘텐츠를 제거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만 기계학습과 AI가 하는 실수를 방지하려면 인간 필터링이 필요하다. 온디맨드 작업을 활용하면 컴퓨터 능력에 인간 통찰력에서 나온 창의성과 활력을 더할 수 있다. 
고스트워크의 작동 방식은 흥미롭다. 우선 공통 언어가 필요하다. 10여 년 전 개발자들은 오직 컴퓨터를 위한 코드를 짰다. 오늘날에는 엠터크와 같이 `인간을 활용하는` 코드가 만들어진다. 소프트웨어는 프로젝트를 잘게 분배하고, 작업 흐름을 관리하며, 사람들이 작업한 결과물을 처리하거나 심지어 보수를 지급한다. IT 기업뿐만 아니라 이런 그림자 노동 수요는 제조, 소매, 마케팅, 고객 서비스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고스트워크는 공장 생산현장과 비슷하다. 19세기 농가에서 1센트를 받고 성냥을 잘라 담던 노동과 로봇 또는 소프트웨어 기술 결함을 막기 위해 밤낮 없이 관리하는 일은 `저숙련` 노동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기대만큼 똑똑하지 않은 AI를 보조해야 한다는 점은 다르다. AI의 빈자리에서 사람들은 결혼식 장소를 선택하고, 소득세 신고서를 고쳐줘야 한다. 
우리 환상과 달리 AI 자동화에는 결승점이 없다. 자동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사람이 붙어서 고쳐야 하고, 그 문제가 해결되면 결승점은 다시 이동한다. 심지어 AI가 발달하면 예측하지 못한 유형의 일을 담당하는 새로운 임시직이 만들어진다. 자동화의 가장 큰 역설은 인간 노동을 없애려는 욕구가 커질수록 인간을 위한 일이 항상 새로이 생긴다는 점이다. 사람의 일과 컴퓨터의 일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AI인 알파고에도 인간 비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저명한 AI 학자 토머스 디트리히는 "세상에 관한 지식 공백을 AI에 채워줄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 세계 삶은 바둑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그림자 노동`의 대부분이 법적 지위가 없는 자유계약직이나 임시직이라는 데 있다. 게다가 주 52시간 근무제 따위의 제약은 로봇과 AI 세계에서 의미가 없다. 언제나 접속돼 있고, 항상 일을 요구하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도움도 즉각적으로 필요하다. 온디맨드 노동 플랫폼은 상시 대기 중인 대규모 인력풀을 제공한다. 국가 간 경계도 없고, 어떤 법적 제약도 없이. 미래 직업은 수요에 따라 서비스와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과거 연공서열식 노동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처참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미래 노동에는 정규직도 없고, 정년도 없으며, 본업도 없을 것이다. 이미 미국의 지난 10년간 고용률 성장치는 임시 노동자 증가에 따른 결과였다. 

그렇다면 미래 노동자에게 필요한 기술은 뭘까.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의 여러 단계를 다루고 AI 그늘에서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서울이든 뭄바이든 포틀랜드든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누구나 기업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생태계가 앞으로 확대될 것이다.

저자들이 인터뷰한 그림자 노동자 수백 명은 희망과 불안을 모두 품고 있었다. 이 일자리는 거주지, 장애, 낙인찍힌 소수자 집단이란 이유로 정규 직업을 갖기 어려운 사람들이 쉽게 접속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말한다. "경제와 고용의 미래는 로봇이 인간을 밀어내고 주도권을 쥐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공상과학 영화보다는 요즘 시대의 온디맨드 경제에 가까울 가능성이 더 크다."                     출처: 매일경제'190817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