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읽고 ♣

미국 `8학군` 아이들은 왜 죽음에 전염되었나

달컴이 2019. 7. 30. 11:45



2009년 실리콘밸리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팰로앨토 지역에 기이한 정신병이 창궐해 학생들이 무더기로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정은 화목했고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며 친구도 재능도 인기도 많은 아이들이었다. 이들이 불가항력적으로 달리는 통근 기차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리 대니얼 크라비츠는 자신의 이웃집 아이들이 선택한 죽음에 충격을 받아 이 `사회전염`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사회전염 사건이란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전염되면서 타인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사회전염학에 따르면 영향력은 관찰을 통해 전파된다. 전염은 적절한 시기에 환경에 스며들어 글과 말을 빌미로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주식시장에서는 탐욕에 전염되고, 교내 총기 사건은 폭력의 전파를 보여준다. 개인의 욕구와 행복, 아량, 용기, 직업 윤리마저도 감기처럼 타인에게 전염될 수 있다. `왜`라고 질문하는 학자들과 달리 저자는 이 르포르타주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며 전염의 위험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역설한다. 
크라비츠는 2009년 아내가 구글로 이직하면서 팰로앨토로 이주했다. 새 아파트로 이사온 지 불과 일주일 만에 그 사건이 벌어졌다. 인근 칼트레인 선로에 블랑사르라는 소년이 뛰어든 것. 3주 뒤 같은 곳에서 소냐 페이메이커가 또다시 자살을 했다. 마을은 자살 동기를 두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3개월 뒤 이번에는 카트리나 홈스라는 신입생이 목숨을 잃었다. 저자는 도서관에서 `연쇄자살`에 관련한 자료를 찾아봤다. 1986년 일본의 유키코 오카다가 자살한 뒤 10여 명이 따라 죽었다. 1997년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했을 때도 독자들은 주인공을 따라 권총자살을 했다. 빈의 비상대책위원회는 곧장 신문에 재갈을 물려 효과를 봤다. 팰로앨토도 이 가이드라인을 따르기로 했다. 몇 주 동안은 일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네 번째, 다섯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매체 치유 방식은 효과가 없었다. 
태풍의 눈에 헨리건고등학교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우수한 학교 중 하나인 소위 `8학군`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족들이 이 동네에 살았고 나사 페이스북 테슬라 구글 스탠퍼드대에서 일하는 가족이 즐비했다. 사망자들은 연극과와 운동부 등을 이끄는 스타에 인기도 많았다. 교사인 로니 하비브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내놓은 가설은 모든 것의 전염성이 강한 실리콘밸리가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것. 실리콘밸리는 위대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존재했다. 진공관, 개인 위성, 전기차,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 데님 작업복마저 전염성이 있었다. 연쇄자살은 혁신 기반 경제공동체의 독특한 부자 문화 증후군이 만든 비극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혁신과 월등한 성과가 전염되는 곳에서는, 두려움의 전염성도 강하다는 가설이었다



게다가 이 도시엔 `혹사` 바이러스가 만연했다. 어른들은 빛나는 혁신을 위해 주당 60~80시간을 `죽도록` 일했다. 팰 로앨토의 아이들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이비리그에 진학할 고민을 했다. 모두가 성공을 향해 신발끈을 동여매고 가혹하게 과외활동과 스펙을 쌓는다. 이런 아이들이 히스테리의 전염에 노출된 것이다. 이곳 학생의 12%가 자살을 고려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히스테리가 발생하는 건 최악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가장 강력한 사회전염이며 면역력은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리처드 도킨스는 사회전염을 `밈(Meme)`이라고 불렀다. 
"머릿속에 밈을 이식하면 밈은 수태를 통해 뇌에 기생하고 뇌를 (생각의) 번식 매개로 바꿔놓는다. 이는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의 발생 메커니즘에 기생하는 것과 흡사하다." 
사람들은 생각의 전염에 취약하다. 학생들은 성취 또는 실패에 관한 생각에 전염됐을 가능성이 컸다. 지극히 폐쇄적이고 조밀한 공동체의 경우 행동을 반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지배적 경향의 전염성도 강해진다. 정서는 마치 원자폭탄처럼 밖으로 발산해 인간 공동체를 휩쓸며, 각 개인은 인간의 정서적 경험과 관련해 닥치는 대로 수용하고 반영한다. 폭식증의 치료법을 연구한 데버라 브레너리스에게 저자는 "어떻게든 질병의 전파를 막아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폭식증 치유 모임에서는 대화 경험의 공유, 공감이 큰 효과를 봤다. 끈끈한 사회관계망을 만들어 건강한 습관을 서로에게 전염시키고 활력과 희망을 전파했던 것이다. 치유 모임의 확산은 폭식증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치료의 사회전염도 힘이 셌다. 
사고 이후 사람들은 추모리본을 달고 손편지를 썼다. 위령비를 세우고 급우를 추모했다. 교사들은 이 도시에 결핍된 공감의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저자는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기로 했다. 이야기의 틈에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트로이 목마`를 넣기 위해서였다. 3년이 지난 후 실리콘밸리에는 새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이를 학구열이 지나치게 과열된 이 도시에서 키우기 싫은 이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팰로앨토의 사람들은 공동체 재건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허망하게도 2014년 겨울, 3명의 희생자가 더 나왔다. 이 도시를 배회하는 악령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SKY 캐슬`에서 목격했던 욕망과 스트레스가 아이들을 집어삼키는 살인자였으니까.

저자는 "역설적으로 이 마을은 본받아야 할 곳이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 서로를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실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행인 건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행복과 활력도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10대 자살률도 팰로앨토에 비할 만큼 높다. 전염의 방향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싶다.                                                            출처 : 매일경제'190727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