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가 기원전 58년 갈리아 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 영국의 생활상은 유럽 대륙과는 판이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브리타니아(영국)인들은 온몸에 푸른색 물감을 칠한 채 짐승가죽 정도로 몸을 가린 채 살고 있었고, 부자지간이나 형제가 한 아내를 공유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같은 시기 로마에서 이미 의회정치가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당시 영국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사회였던 게 분명하다. 영국도 스스로 이 점을 인정한다. 윈스턴 처칠도 "카이사르가 도버 해협을 건너면서부터 영국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사실 영국의 변방 콤플렉스는 영국의 정체성 그 자체다. 영국인들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외친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살펴봐도 그렇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중 상당수가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배경이다.
`햄릿`의 무대는 덴마크다. 그러니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외친 햄릿 왕자는 덴마크 왕자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 베로나가 배경이다. 셰익스피어 희곡 중에는 `베로나의 두 신사`라는 작품도 있다. `베니스의 상인`은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배경이다. `오셀로`도 베네치아와 사이프러스섬이 주요 배경이고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로마가 무대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한여름 밤의 꿈`은 그리스 아테네가 배경이다.
재미있는 건 셰익스피어가 영국을 떠났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대부분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나 그리스를 실제로 가 본 적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왜 셰익스피어는 유럽대륙을 소재로 작품을 썼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선진국이었기 때문이다. 변방 섬나라 사람들에게 이탈리아는 흉내 내고 싶은 로망이었을 것이다.
영국을 풍자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했다는 주장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가상의 국가나 도시를 만들지 않고 실제 존재하는 곳을 무대로 삼았다는 건 셰익스피어의 머릿속에 유럽 대륙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중요한 건 영국이 자신들이 가진 콤플렉스를 흉내 내고 동경하는 데만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변방의 섬나라는 중요한 순간마다 냉정하게 대륙과 거리두기를 했다.
헨리 8세가 교황청에 대들었던 상황을 생각해보자. 당시 유럽의 대국들은 모두 내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거의 전 유럽을 통합지배했던 합스부르크제국은 신교도 및 오스만튀르크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운 상황이었고,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교황청이 내리는 징벌을 수행할 국가는 없었다. 헨리 8세는 이를 귀신같이 알았던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그랬다. 영국은 유럽통합 작업에 늘 미온적이었다.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CC)에도 뒤늦게 가입했고, 유로화 도입도 거부했다. EU 내 자유로운 통행을 약속한 솅겐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이것이 영국의 태생적 습성이다. 대륙과의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오늘날의 영국은 만들어졌다. 필요할 때는 대륙을 배우고 이용했으며, 이익이 되지 않을 때는 가차 없이 등을 돌렸다.
미래 영국이 브렉시트로 인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과오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찬성론자들의 주장대로 선견지명일 수도 있다. 한 가지 중요한 건 영국이라는 나라가 너무도 영국다운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자. 국가 간의 관계에 선과 악이 있었던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었던가?
브렉시트를 일부 영국인이 저지른 `깽판` 정도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절반 이상의 영국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마이웨이를 외친 건 EU에서 어떤 불길한 전조를 읽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대국들 사이에서 역사를 유지해야 할 운명에 처한 우리는 특히나 이 문제를 단선적으로만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출처 : 매일경제 160708 [허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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