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나폴레옹전쟁 이후 국제질서에서 첫 왕따가 된 사건은 로베르 쉬망이 철강석탄공동체를 설립할 때였다. 1951년의 일이다. 그래도 영예로운 고립(Splendid isolation) 속에 독야청청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수에즈 운하를 영국에서 뺏어 미국, 소련이 제멋대로 처분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은 자신을 되돌아봤다. 맥밀런 총리(보수당)는 영국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극비리에 만들어 보니 `계속되는 추락`으로 나왔다. 그리하여 10년간 협상 끝에 대영제국의 추억을 잊고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다. 영국의 60년 묵은 고민은 이민과 경제 두 가지 문제다. 그리고 이번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도 똑같은 문제로 튀어나왔다.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조7600억달러로 세계 전체의 4%밖에 안 된다. 영국이 빠져나갔다고 무슨 난리가 나진 않는다. 문제는 브렉시트가 EU 연쇄 탈퇴의 방아쇠를 당길지, 미국의 트럼프 후보와 맥을 같이하는 신고립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될 것인가이다. 시장은 뉴욕증시가 방향을 정하면 기러기떼처럼 따를 것 같다. 신고립주의는 트럼프가 힐러리에게 12%나 뒤져 그리 호들갑 떨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영국이 EU 탈퇴를 결심한 배경은 연간 33만명에 달하는 이민자 문제와 독일이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EU 집행부의 결정을 따라야 함으로써 국권이 손실됐다는 분노 때문이다. 영국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경기가 좋은 편이다. 이슬람이 파리, 브뤼셀 테러를 일으킨 것도 영국인에게 충격을 줬다. 연간 30조원가량 내는 분담금을 차라리 국내로 돌려 무슨 수를 내보자는 것이다.
영국이 EEC에 가입한 중대 요인 중 하나가 독일의 유럽 지배를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EU 집행부는 메르켈의 입이 좌우하고 있어 영국은 독일의 득세를 막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더욱 독일의 아류 국가가 될 판이다. 영국이 질질 끌려가느니 수출 45%를 의존하는 EU를 박차고 나온 용기에는 역사 속에서 무적함대, 나폴레옹, 히틀러 군대를 깨부순 기상이 숨어 있다. 결국 영국-독일 간 유럽세(勢)를 건 모험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기백은 가상하나 제로성장 시대에 과연 반란이 통할까. 향후 영국의 진로는 두 가지 예측으로 나뉜다. 나쁜 방향은 스코틀랜드마저 잉글랜드에서 이탈해 산산이 부서지는 경우다. 좋은 방향은 EU 집행부가 영국에 잔류 명분을 주고 그러면 차기 총리가 국민투표를 재실시해 남는다는 시나리오다. 메르켈은 "빨리 떠나라"고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결국 영국은 EU를 떠나지 않을 것"이란 칼럼을 냈다.
유럽이 경제통합으로 발을 내디딘 1991년 마스트리흐트조약의 큰 뜻은 미국보다 조금 느슨한 유럽합중국 건설이었다. 각국이 주권을 가지면서 경제통합, 공존, 깊게는 프랑스 대혁명의 기본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를 이 세상에 실현해 보고 싶어했다. 솅겐조약에 의해 모든 국경을 헐고, 노동자는 어느 나라나 가서 취직하고 번영의 꿈을 이루며 열락의 인생을 구가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꺼져버린 세계의 성장엔진과 양극화, 중동 종교전쟁으로 인한 난민 쇄도로 통합 EU의 꿈은 금이 갔다. 28개국의 형편이 모두 다른데 통화, 금리, 재정정책을 쓸 수단이 없다는 유로(euro)커런시의 설계는 애초에 잘못됐다. EU는 금융위기, 재정위기, 난민 등 3대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볼프강 문차우는 오는 10월 이탈리아 헌법개정 투표가 EU 후속 탈퇴의 명운을 가를 것으로 예측했다.
브렉시트는 아시아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과 일본에 시선이 가장 많이 쏠린다. 미국, 유럽의 은행주들이 급락한 배경은 중국에 돈을 많이 빌려줘서다. 중국의 EU 수출비중은 15%로 중국 경제침체가 염려된다. 런던은 위안화의 서방 전진기지다. 참으로 복잡한 계산이다. 일본 아베노믹스엔 악재다. 한국은 유럽 자금의 향방이 문제지만 환율 상승으로 일본에 비해 수출경쟁력이 크게 향상돼 단기적으론 이득이다.
`꽉 다문 윗입술(stiff upper lip)`의 영국인들은 건곤일척의 세기적 주사위를 던졌다. 어차피 한번쯤 걸려야 할 국민투표일 수도 있으나 캐머런 총리가 총선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공약으로 저지른 일이다. 만약 영국이 이번에도 이기고 돌아온다면 로마군단 침입 이후 2000년 이상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저력에 전 세계가 감탄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제조업은 쇠하고 런던의 국제금융가마저 위험해져 상황은 너무 불리해 보인다. 마침내 영국은 쪽박을 찰지도 모른다. 브렉시트는 준엄한 교훈을 남겼다. 세대 간, 지역 간 의견 대립이 첨예한 사안을 대권 공약(公約)으로 써먹어 전 국민을 죄수의 딜레마에 몰아넣지 말라는. 세종시, 영남 신공항의 갈등을 겪어본 한국의 정치판은 명심, 또 명심하라.
출처: 매일경제 160629 [김세형 주필]
달컴이 끄적끄적 : 영국의 브렉시트(EU탈퇴)로 매스컴 매체가 관련 내용을 많이 쏟아내고 있는데,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망국적인 공약과 거기에 놀아나는
무지의 순진한(바보같은) 국민이 빗어낸 결과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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