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동안 ♣

다르게 생각하자 !

달컴이 2016. 6. 20. 10:00

 

 

 

내가 고전음악에 심취한 것은 열일곱 살 무렵인데,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나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같은 표제음악을 주로 들었다. 1970년대 국영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클래식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 자정 넘어 벽을 넘어 들려오는 수정처럼 투명한 소리와 비통한 흐느낌이 한데 어울린 비탈리의 `샤콘`에 귀를 기울이며 눈물을 흘리고, 강원도 영월의 한 국밥집에서 혼자 밥을 먹다가 만난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때문에 국밥에 콧물과 눈물을 빠뜨린 적도 있다. 첫 연애에 실패하고 낙담 속에서 말러의 교향곡을 듣고 심장이 터질 듯한 환희심으로 다시 살아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은 적도 있다. 백수로 떠돌던 청년 시절 신실한 그리스정교회 신자처럼 음악감상실을 날마다 찾아다니며 고전음악을 들었는데, 어느 순간 귀가 확 열리는 느낌이 왔다. 나는 화성악이나 대위법 같은 음악이론, 악보 읽는 법, 건반 운지법(運指法) 따위를 모르는 까막눈이었지만 차츰 교향악단 악기들 소리가 귀에 선명해지고, 그 많은 악기들이 만드는 화음의 아름다움이 명료하게 들어왔다.


스무 살 넘어 광화문의 `르네상스`나 명동의 `필하모니` `티롤` 같은 곳을 드나들며 귀동냥을 하며 클래식을 듣다가 집에 쿼드 앰프에 탄노이 스피커를 조합한 오디오 기기(器機)를 들여놓은 것은 출판사를 경영하며 살림이 폈던 삼십대 중반이다. 얼마 동안 만사를 제쳐놓고 그 오디오 기기로 클래식을 듣는 일에 빠져 지냈다. 고전음악 명곡 음반들을 사 모으고 소리의 황홀경에 빠져 보낸 그 시절 내 마음은 여유롭고 낙관적이었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좋아하는 곡을 맘껏 들었던 그 시절이 감미로운 것은 분명 고전음악 덕택이다. 한두 해가 지나면서 그 자유도 시들해졌지만, 지금도 고전음악에 몰입하면 행복해진다.

사는 게 팍팍해지고 힘들 때 일들을 손에서 놓고 바흐의 `파르티타` 전곡을 종일 들을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의 10년쯤을 떼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바흐 곡을 관통하는 맑음에 영혼이 정화되는 듯한 기쁨은 젊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것저것 수집하는 벽들을 끊고, 단순하게 살려고 애를 쓰지만 그렇다고 바흐 음악의 즐거움까지 끊을 필요는 없었다. 바흐 음악은 `얼어붙은 건축`이다. 바흐의 곡들은 소리가 견고하고 수학처럼 명석해서 좋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은 몇십 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 감미로움의 결이 만드는 감동의 파장은 신기하게도 변함없이 똑같다.

어느 날 책에서 `바흐 밖에서 생각하자(Think outside the Bach)`라는 구절을 만났다. 세스 고딘은 제프 리드라는 한 교향악단을 이끈 음악감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드는 소도시에서 오케스트라를 맡아 여섯 시즌을 보냈는데, 대다수 교향악단들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 승승장구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리드는 청중이 틀에 박힌 고전음악의 레퍼토리를 버거워한다는 걸 깨닫고, 한 연주회에서 베토벤과 비틀스를 함께 연주하는 파격을 선보인다. 베토벤의 장중한 교향곡 5번을 연주한 뒤 프로그램에 없던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깜짝 연주한 것이다. 청중은 그 파격에 어리둥절하다가 그다음엔 즐거워하고 열광했다. 교향악단의 오랜 고정관념을 깬 파격에 청중이 열광으로 화답한 것이다. 리드가 이끄는 교향악단은 음악 장르를 넘나들며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해지고, 그 뒤 연주회 때마다 청중이 넘쳐난다.

`바흐 밖에서 생각하자`는 말은 `고정관념을 깨자(Think outside the box)`라는 말을 비튼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자! 작곡가 에리크 사티도,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도,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다르게 생각하기를 실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낡은 생각의 틀에서 넘은 파격, 고정관념을 깨는 파괴, 전통에서의 일탈 끝에 열리는 `인식의 전환`이라는 놀라움을 겪고 그것이 산출하는 결과에 확신을 품었다. 그 확신이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낡은 세상은 다르게 생각하기를 실천하는 이들로 인해 더 젊어지고 새로워진다. 우리가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굳게 믿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으면 뜻밖의 신세계가 열린다. 나는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의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들을 때마다 `바흐는 바흐 밖에서 생각하자`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문명은 문명 밖에서, 먹고사는 것은 먹고사는 일 밖에서, 인생은 인생 밖에서 생각하자! 

                                                                                                                                     출처: 매일경제160620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