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승부를 뒤집은 예상치 못한 승부수다.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알파고는 백102수로 우변 흑집에 침투했다. 뜻밖의 승부수는 이세돌을 흔들었고 결국 형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예상대로 초반은 '초박빙'으로 흘렀다. 이제 '이세돌 우세'로 점쳐졌던 중반. 하지만 이세돌 9단이 흑123수에서 큰 실수를 범하며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백150은 이날 알파고가 승부를 확정지은 큰 자리였다. 이 한 방으로 박빙이었던 승부는 도저히 뒤집힐 수 없는 형국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끝내 이세돌은 돌을 던졌다.
흑은 이세돌 몫이었다. 딥마인드의 개발자이자 아마추어 6단인 아자 황이 알파고를 대신해 돌을 가린 결과 이세돌 9단이 흑을 잡게 됐다. 중국 룰로 대국이 치러지는 탓에 덤이 7.5집(한국룰은 6.5집)이나 돼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흑을 잡은 이세돌로서는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세돌 9단이 첫 수로 우상귀 소목을 선택하자 알파고는 첫 수부터 뜸을 들였다. 화점에 백돌을 놓을 때까지 무려 1분30초가 걸렸다. 역시 포석 싸움에서는 이세돌이 우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흑7은 변화를 주는 수였다. 이세돌로서는 알파고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타진하는 '도발의 수'라 할 만하다. 과연 알파고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런데 알파고는 장고가 없었다. 지체 없이 백8로 받는다.
이미 수십만 가지 기보를 통해 수를 익힌 알파고가 변화의 수에도 적응하는 능력을 갖췄을지도 모를 대목이다. 오히려 이세돌이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백10에서 18로 갈라친 흐름이 괜찮았다. 흑19는 좀 무거운 느낌이 들었고 흑23은 조금 지나쳤다. 이따금 한숨을 쉬는 모습에서 이세돌이 얼굴도 없고, 수에서도 흔들림 없는 알파고에 기가 눌린 느낌이 든다.
알파고는 백28로 끊어 공세를 취했다. 초반 50수까지 알파고는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만의 수를 둬 나갔다. 백66 위쪽에 흑 두 점을 잡고 흑77로 백 두 점을 잡았다.
이때까지 형세는 알파고가 괜찮았다. 알파고가 상변에서 흑을 강하게 끊으며 거칠게 몰아붙일 때만 해도 초반 공격의 주도권을 잡은 듯했다. 이세돌은 우변에 집을 짓고 알파고는 상변에 세력을 쌓아 흑을 공격하는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는 이세돌의 전매특허였다. 싸움을 먼저 건 쪽은 알파고였다. 이세돌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었다.
흑81로 사방이 두터워졌다. 백이 주도하던 형세가 갑자기 확 바뀌었다. 흑81은 공격의 시작이다. 이제 과연 알파고가 수습을 할 수 있나 시험대로 접어드는 형국이었다. 백이 86으로 끊었다. 단순히 쉽게 사는 것은 백이 좋지 않아 보인다. 백이 괜찮은 그림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았다.
흑87에서 이세돌 생각이 조금 길어졌다. 고민스러운 장면은 아니다. 이제 서로 남은 시간은 1시간7분(알파고), 그리고 1시간6분(이세돌)으로 비슷하다.
흑89는 기분 좋은 두드림이다. 흑은 점수를 올렸다고 봐야 할 것이고, 백은 당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래쪽에서 흑집이 많이 난다. 흑이 막 '이기는 길'로 들어서는가 싶을 때 알파고의 승부수가 나왔다. 형세가 불리하다고 정확하게 판단한 알파고는 백102로 우변 흑집에 침투했다. 백102는 이날 승부를 뒤집은 알파고의 '신의 한 수'라 해야 할 것이다. 마침 '백102'에 이창호 9단이 옆에서 거든다. "알파고가 참 잘 두는 것 같다. 흑이 낫지만 아직 백도 해볼 만하다. 처음에는 흑이 좋지 않았는데."
백이 흑 모양에 들어가 흔들기 시작하자 최강 이세돌이지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세돌은 대국 후 흑123으로 붙인 수가 실수였다고 했다. 128 자리에 놓았다면 승부를 뒤집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하귀에 백 대신 흑이 집을 지을 수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백124로 아래쪽 흑집이 깨지며 집 차이가 크게 줄어 들었다. 흑127로도 128 자리에 두는 것이 나았다.
백이 우하귀에서 산 것은 이세돌에게 치명타가 됐다.
더군다가 백150은 이세돌이 회생할 수 없는 길로 몰아간 남은 수 중 가장 큰 자리였다. 이제 도저히 백이 질 것 같지 않은 모양이 됐다. 끝내 186수 만에 이세돌이 돌을 던졌다. 인간 최강 이세돌이 '인공지능'에 패하는 순간이다.
출처: 매일경제 160310 [양재호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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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 알파고에 충격패 / 취재진 앞에 선 이세돌9단…환호하는 구글 ◆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도 눈을 최대한 깜빡이지 않았다. 입을 한일자로 앙다물고 앞만 바라봤다. 9일 첫 판을 알파고에 불계패한 뒤 세계 취재진 앞에 선 이세돌 9단(33)의 모습이었다. 그는 "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 너무 놀랐다"며 운을 뗐다. 1국 실패에 대해서는 "포석을 만들 때 초반의 실패가 계속 이어졌다"며 "알파고가 이처럼 완벽하게 바둑을 둘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 9단은 "대국 초반 알파고가 경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놀라웠다.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서로가 어려운 바둑이란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없다면 절대 둘 수 없는 150번째 흰 돌을 보면서 패배를 예측했다. 많은 프로기사들이 알파고의 이 한 수를 보며 "사람이면 둘 수 없는 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알파고와의 대국을 수락한 점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세돌은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었다. 그는 "조금 충격적이긴 하지만,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앞으로의 대국도 기대가 돼 후회나 우려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9단은 "오늘 제가 포석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저에게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알파고의 실력에 대해 방심한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는 "알파고의 놀라운 수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실력이 5대5(대등하다)라고 본다. 실력이 비슷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판후이가 지난해 10월 알파고에 패배했을 때와 지금의 패배를 비교하는 것에 대해선 싫은 표정을 지었다. 판후이는 유럽을 대표하는 챔피언이지만 2단에 불과하고, 유럽에 바둑을 전파하는 인물로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 대회에 나가는 일을 오래전에 그만뒀다. 그래서인지 한 중국 기자가 판후이도 첫 경기 때 알파고에 지고 계속 영향을 받았다며, 이 9단은 어떠한지를 묻자 정색했다. 이 9단은 "판후이와 나의 경험은 다르다. 나는 여러 번 세계 대회 우승 경험도 있고 실적 자체가 판후이와 다른 선수라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파고가 이 9단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에는 "정말 놀라움을 선사한 알파고지만, 지금 이것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 9단은 취재진을 향해 애써 웃음을 지으며 "이제 첫 게임이다. 4번의 대국이 남았다는 걸 알아달라"고 했다. 이 9단 옆에는 에릭 슈밋 알파벳(구글 지주회사) 회장과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비교적 가벼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묵묵히 이 9단의 질의응답을 지켜봤다. 이 9단 불계패가 확정되는 순간 하사비스 CEO는 자신의 트위터에 "승리!!!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 팀이 자랑스럽다. 어메이징한 이세돌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한편 제프 딘 구글 딥리서치팀 시니어 펠로는 이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인공지능으로 다양한 게임을 테스트하고 있는데, 다음 상대로 스타크래프트에 도전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딘 펠로는 "스타크래프트는 바둑 같은 보드게임과는 또 다르다"면서 "전체 판을 볼 수 없고 사람의 시각 바깥에서 이뤄지는 상황이 있어 또 다른 도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알파고의 승리는 미래 기술에 대한 구글의 행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구글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로봇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구글 산하 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최근 눈길에서도 능숙하게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였다. 구글은 AI를 활용한 검색엔진과 스마트폰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개발에 그치지 않고 이동통신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AI를 활용한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에서도 구글은 선두주자다. 미국 교통부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최근 구글의 자율주행차를 운전하는 AI를 법적인 운전자로 인정하기도 했다.
출처 : 매일경제 [이경진 기자 / 조희영 기자)
과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국 전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점쳤다. '마법의 돌'로 불리는 이세돌 9단이 상식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수를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지난해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를 이기면서 자신의 실력을 뽐냈지만 프로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많은 기보를 통해 학습했다 하더라도 이세돌 9단이 갖고 있는 직관, 즉 인간이 갖고 있는 상상력을 이겨낼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알파고는 불과 5개월 만에 자신의 능력을 이세돌과 맞먹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9일 대국을 지켜본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는 "인공지능의 발달 속도가 상당히 빠른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2007년 IBM에 입사해 제퍼디 퀴즈쇼에서 우승한 인공지능 '왓슨' 개발에 참여했던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초반 이세돌 9단이 변칙적으로 접근하며 알파고를 시험했다"며 "하지만 알파고는 침착하게 대응하며 풀어나갔다"고 설명했다. 감 교수는 바둑 아마 공인 5단이다.
감 교수는 "알파고가 능력을 키우려면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많이 입력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아 알파고1, 알파고2 등 자신들끼리 시합을 통해 능력을 키웠다"며 "단순히 기보를 늘린다고 이처럼 인공지능이 발전했을 것 같지는 않다. 구글만이 알고 있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추가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바둑 아마 3급인 박승수 이화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도 대국을 지켜보며 "기계가 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며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둑도 하나의 대화라고 본다면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테스트로 불리는 '튜링테스트'를 알파고에 적용했을 때는 프로급 기사로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튜링테스트는 기계가 인공지능을 갖췄는지를 판단하는 실험이다. 채팅을 통해 대화했다면 사람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얘기다. 2014년 영국 레딩대가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람으로 느끼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박 교수는 "바둑에는 수읽기, 형세판단, 감각, 스타일 등이 동원되는데 컴퓨터는 수읽기 빼곤 다 힘들다고 여겼다"며 "알파고는 그런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알파고의 승리 요인으로 실수를 하지 않는 인공지능의 안정성을 꼽는 시각도 있다. 이수원 숭실대학교 소프트웨어학부 교수는 "게임 분야는 문제와 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분야"라며 "인간의 창의성보다는 실수를 하지 않는 인공지능의 안정성이 더 부각됐다"고 말했다.
바둑을 점령한 구글의 알파고는 어디에 적용될 수 있을까. 감 교수는 "알파고가 갖고 있는 알고리즘을 구글의 검색 엔진에 적용할 수 있다"며 "더 정확하고 빠른 검색, 사용자에게 맞는 검색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금 더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로봇에도 적용할 수 있다. 구글은 인공지능 회사인 딥마인드를 인수하기 전에 로봇 회사 15곳을 인수했다. 인수한 회사 중에는 2013년 로봇공학챌린지(DRC)에서 2등과 월등한 차이로 우승한 일본의 샤프트도 포함됐다.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을 로봇에 적용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인공지능 발달이 이처럼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자의식'을 갖고 있는 '강인공지능'의 개발은 어렵다.
기계가 자의식을 갖게 되는 순간 인간은 기계에게 지배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대국을 보며 "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로 보는 것보다는 공존을 생각할 것을 주문했다.
감 교수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은 인공지능의 지배가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만들어낸 연구 결과가 가장 재능 있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서울대 재료공학부 객원교수)는 "알파고의 바둑 도전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체스와 퀴즈, 바둑을 넘어 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하는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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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3월 11일
대국 후 공식 브리핑 단상에 오른 이 9단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데미스 하사비스 CEO는 톤 변화가 없는 기계적 인사를 건넸다. 그는 "끝내기까지 긴장감이 감도는 대국이었다"며 "알파고가 예측하지 못했던 변칙적 수를 두면서 더 흥미진진했고 이세돌 9단도 훌륭했다"고 말했다. 승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 9단은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놀랐다. 오늘 바둑은 정말 완패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제가 앞섰다고 느낀 적이 한순간도 없었다. 어제 느꼈던 이상한 점도 오늘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알파고는 완벽하게 승리했다. 프로 바둑기사 9단을 입신(入神)이라고 한다.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그 경지를 넘어섰다. 신(神)의 바둑이었다. 영어 해설을 담당한 마이클 레드먼드는 "알파고 대국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혁신, 모험, 때로는 위험할 것 같은 수를 두면서 성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레드먼드는 "중후반부로 갈수록 알파고가 높은 실력과 기풍을 가졌다는 걸 알았다"고 덧붙였다. 한국어 해설자 유창혁 9단은 "이 9단이 오늘 너무 안전하게 바둑을 둔 것 같다"며 "알파고가 끝내기 부분에 문제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너무 잘 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모든 해설가의 평가를 들은 뒤 이 9단은 기어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는 취재진들의 카메라 셔터가 바쁘게 터졌다. 좌중 사이에서 "도대체 알파고의 약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이 9단은 "약점을 못 찾아 두 번 다 졌다"고 거듭된 실패를 인정해야만 했다.
세 번째에는 과연 인간의 자존심을 확인할 수 있을까. 이 9단은 "한 판은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바둑으로 미뤄봤을 때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알파고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빠르게 승부를 보는 쪽으로 가야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9단이 2연패를 기록하자 장내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이리저리 판을 흔드는 이세돌 특유의 게릴라전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두 번이나 확인하자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도 많았다. 한 참관자는 "(이세돌 9단이) 글로벌 마케팅의 희생양이 된 것 같다"며 "초절정 고수가 받았을 상처와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감정 기복이 없는 기계, 알파고는 난공불락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뒷심을 발휘하며 차분히 바둑을 뒀다. 1분 안에 수를 두는 초읽기에 접어들었을 때 시간 계산 프로그래밍 능력이 더욱 빛났다. 그에 반해 이 9단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돌들은 갈 길을 잃었다.
마지막 승부처라고 불리던 대국 3시간5분부터는 이세돌에게 비교적 유리한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4분을 남겨둔 시점부터 그는 무너졌다. 움직임이 많아졌고 자꾸만 망설였으며 난처함이 표정에 읽혔다. 좌중엔 정적이 흘렀다. 초읽기를 하며 알파고를 상대하던 30여 분 동안 누구 하나 승패를 묻는 이가 없었다. 2국을 해설한 유창혁 9단도 점점 할 말을 잃어갔다. 그는 "알파고에 대한 작전이 두 번이나 실패했다"며 "이세돌만의 자연스러운 바둑을 3국에 기대한다"고 패색이 짙은 상황을 애써 갈음했다.
이날 대국장에서 심판을 본 김성래 5단은 대국 결과에 대해 "경악스럽다"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알파고가 훨씬 세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앤드루 아쿤 미국바둑협회장도 "이세돌 9단이 심각한 실수를 두지도 않은 데다, 중반까지는 이 9단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세돌이 5대0으로 완승할 것이라고 말하던 국내 바둑 관계자들도 남은 대국에서 1승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김성래 5단도 앞으로 남은 경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김 5단은 "현 챔피언인 중국 커제가 알파고랑 붙더라도 (알파고에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 매일경제 160311 [이경진 기자 / 조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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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2일
이세돌 9단 한사람 1 vs 1202 알파고 탑재 CPU
주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나 명문 사학에서도 바둑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그 수준은 아마추어를 넘지 못한다. 이들과 알파고의 근본적 차이는 배우는 시간의 차이다.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감독 학습에 의한 고수의 '다음 수 맞히기' 학습 과정에서 알파고는 55%의 정확도를 보였다. 이것에 동원된 문제가 3000만개라고 하니 따져보면 250수짜리 대국을 첫 수부터 맞히기로 했다면 이미 12만판에 대한 학습을 마친 것이다. 대국 한 판을 20분에 끝내는 셈인데 하루 종일 대국을 둔다면 72판 대국을 둔다.
판후이와 경기를 치르고 5개월 동안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준비하면서 알파고는 1만800판을 기존 12만판에 더했다. 추가된 부분만 인간 프로기사 1년 이상 대국 횟수에 버금간다. 알파고 초기 CPU는 48개였다. 이때도 다른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과 500번 이상 실력 겨루기를 마친 후였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 간담회에서 "알파고는 크레이지스톤, 젠 등 다른 바둑 프로그램과 4수나 접어두고 경기를 할 때도 승률 75% 이상을 기록했다"고 자랑했다.
물론 대등한 위치에서 경기를 하면 승률은 99.8%로 오른다. 인간과 대결을 준비하면서 컴퓨팅 파워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1900개의 CPU를 달아봤는데 오히려 계산 능력이 떨어졌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1202개라는 최적의 숫자가 나왔다. 지난해 10월 판후이 2단을 완패시킨, 그리고 지금 이세돌 9단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알파고다. 알파고는 바둑판 위에서 1초당 10만개의 수를 고려한다. 그게 평균 1~2분 정도 걸린다.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월등히 빠르다. 176개 GPU도 괴물 알파고를 만든 중요 요소다. 데이비드 실버 구글 딥마인드 개발총책임은 이를 알파고 브레인이라고까지 했다. CPU에 GPU를 함께 구성하면 CPU만 탑재한 것보다 수십 배 연산 속도가 빨라지고 발열도 적다. GPU 기능은 구글이 앞서 있는데 아마도 알파고 CPU 능력을 폭발적으로 향상시켰을 것이다.
딥마인드팀이 알파고를 데려왔지만 실물로 데려온 것은 아니다. 모든 인프라는 미국 서부 마운틴뷰 구글 데이터센터에 마련돼 있다.
알파고는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서울 대국장 랩톱과 모니터에 연결됐다. 구글 관계자는 "한국에선 인터넷 인프라가 잘 작동하는지만 확인했다"고 말했다.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 세부적 기술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알파고 논문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며 "알파고 인공지능을 작동시키는 정책망과 신경망을 어떤 식으로 연결했는지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경제 160312 [원호섭 기자 / 이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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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3일
이세돌 “알파고와 첫승 무엇과도 못바꿔…마지막 대국 흑선으로 둘 것"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4국을 승리로 장식한 이후 첫승의 가치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백으로 승리를 거뒀으니 마지막 대국에서는 흑을 쥐고 이겨보고 싶다며 흑으로 두겠다고 구글에 제안했다.
13일 서울 포시즌즈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4국에서 이세돌 9단(백)은 알파고(흑)를 맞아 180수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3연패 이후 첫승이다.
이번 대국도 이세돌 9단이 초중반 불리한 형국으로 진행됐지만 78수만에 중앙에서 이세돌 9단의 묘수가 터져나왔다. 대국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둑 프로 기사들 사이에서 신의 한수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승리를 이끈 수로 지목됐다. 알파고도 78수 이전까지는 자신이 유리한 것으로 형세를 판단했다가 이후 승률이 급격히 하락했으며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악수를 몇차례 두기까지 했다.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도 트위터에 "알파고가 혼란에 빠졌다"며 이세돌의 우위를 인정했다.
이세돌 9단은 78수 이후 형세를 역전시켜 대국을 유리하게 이끌었지만 끝내기에서 몇차례 실수를 하고 알파고가 거세게 추격해와 차이를 줄였다. 그러나 다시 심기일전해 상변과 우상변의 끝내기를 손실없이 마무리한 뒤 하변에 회심의 일격을 가하자 알파고가 결국 돌을 거두고 패배를 인정했다. 180수만이다.
이세돌 9단은 대국을 마친 뒤 가진 브리핑에서 “한번의 승리가 이렇게 기쁠수가 없다”며 "이번 1승은 앞으로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로 그간 많은 응원과 격려에 감사를 표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데미스 CEO도 “오놀의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게 버거운 상대였다”며 “이세돌 9단과 같은 창의적인 천재가 있어야 알파고의 단점을 알고 향후 개선할 수 있어 오늘의 패배는 알파고에게 있어서도 매우 소중한 패배”라고 말했다.
현장 해설을 맡은 송태곤 9단은 "중앙에서 이세돌의 승부수가 아주 멋었었다”며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생각을 알아가고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있고 오늘 알파고의 약점이 보였기 때문에 5국에서는 보다 재미있는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세돌 9단도 “알파고가 백보다 흑을 더 어려워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수가 나왔을 때 버그 수준으로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약점”이라며 “백을 쥐고 이겼기 때문에 다음 대국에서는 흑을 쥐고 이기고 싶다. 구글에 흑선으로 대국을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이번 승리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1대 3이라는 전적을 기록했다. 마지막 대국은 오는 15일 오후 1시 서울 포시즌즈호텔에서 진행된다.
출처 : 매일경제 160313 [디지털뉴스국 김용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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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밖에 못그린 뇌지도…정밀해질수록 AI는 진화
◆ AI 혁명 / 인공지능 미래 뇌연구에 달렸다 ◆
알파고는 인공지능이 도전하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던 바둑에 입성해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승리를 따내면서 인공지능 발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현재 알파고는 바둑에 최적화했다. 알파고를 다른 일에 활용하려면 대대적인 알고리즘 수정이 필요하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대표는 "범용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범용 인공지능을 만들겠다는 것은 인간처럼 다양한 상황에 놓였을 때 정보를 습득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뇌 연구가 필수적이다.
알파고는 정보를 습득해 판단을 내리는 인간의 뇌를 모방했다. 인간의 뇌가 1000억개가 넘는 신경세포와 이들이 연결된 1000조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져 있다면 알파고는 1202개의 CPU를 통해 상황을 인식한 뒤 판단을 내린다. 뇌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학습' 부분을 모방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판단, 직관을 가지려면 뇌를 모방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인간이 뇌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부분은 극히 적다고 말한다. 김성기 기초과학연구원(IBS) 뇌과학이미징연구단장은 "우리가 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1% 미만일지, 10% 이상일지조차 아무도 모른다"며 "뇌지도를 그리겠다는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날은 앞으로 수십 년 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뇌에 있는 무수히 많은 신경세포는 미세한 전기를 흘려보내 기억을 저장하고 학습한 뒤 행동을 명령한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고양이를 몇 번 보고 나면 본 것과 다르게 생긴 고양이가 지나가도 고양이로 인식해 낸다. 하지만 이처럼 쉽게 할 수 있는 일조차도 왜 가능한지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아직 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 만큼 뇌를 연구하면 인공지능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사용하는 엄청난 전력도 뇌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고도의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은 고작 20W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20W는 형광등이나 전구가 사용하는 전력량이다. 반면에 알파고는 바둑을 위해 1202개의 CPU를 사용한다. CPU가 100W를 소비한다고 하면 10만W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셈이다.
뇌를 모방할 수 있다면 이 같은 전력량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광형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은 "알파고가 보여준 딥러닝, 몬테카를로 기술 등은 이미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시작된 과거부터 알려졌던 이론들"이라며 "우리가 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알파고와는 전혀 다른 알고리즘으로 인공지능을 구현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귀결점은 바로 뇌"라며 "인간의 뇌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질수록 인공지능도 함께 향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기 단장은 "우리가 왜 호기심을 갖고, 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은 뇌밖에 없다"며 "뇌지도의 완성은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매일경제 160315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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