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녀온곳 ♣

자하문 밖 세검정(120317~18)

달컴이 2012. 3. 18. 12:22

 

 

3월 17일 오후 2시 :  점심을 푸짐하게? 들어서인지  걷기가 거북하다

간단하게 휙~ 한바뀌 돌아 오겠다고 하면서 나오는데, 어머님 말씀. " 향로봉,  의상능선, 가지마라~ 사람 죽었단다 "

 

 

청운양로원을 지나서  15분정도 걷다보면 '금선사' 목정굴이 나온다.

 

 

 

 

'포금정사'라는 절이 있었던 자리

터의 크기를 볼 진데 그 옛날 절의 규모도 상당히 컷으리라.

xxx산악회에서  신산제를 올리고 있다

 

 

여기저기 시산제를 지낸 흔적이 보이고,   예전 '70년대 초까지 군부대가 있었던 자취도 보인다.

 

 

 

 

 

어머님이 올라가지 말라는 '향로봉'

 

 

향로봉을  목전에 두고 멀리 족두리봉으로 가는 암벽길을 향하여 찍었다.

 

 

 

 

 

 

조기 어머님댁이 보인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자문 밖 세검정은 꼬마시절부터 성인 된 지금까지 곳곳에 추억이 남아 있는 일명 '가마골'이다.

세검정에 산다고하면,  으례 지금은 고관대작이 많이 사는 부자동네라고 하지만  1960~70년대에는 참 어렵고 가난한 서울의

외곽 시골동네였다.  ( 능금, 자두, 감, 호박, 등 과수와 채소를 가꾸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어려운 살림이었다 )

 

3월 17일 구기동 금선사 ~ 향로봉 아래 ~ 탕춘대문 ~ 상명대  2시간 산행을 하다.

   

 

                     3월 18일 아침 :   어제 밤,  집으로가던  중에 차량이 고장나서  어머님댁에서 하루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서대문  문화촌에 차량정비소까지 도보여행 겸 걷기로 했다.    

 

세검정 초등학교에서 북악터널로 올라가는 도로 인도변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

바로 이자리가 조선시대에 종이를 만들었다는 유래가 적혀 있다.  ( 야~!  우리 친정 아버지 닮았네..^^ )

 

 

 

 

세검정 초등학교 : 내가 졸업한 모교,  예전엔 학생이 많아서  3학년까지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공부했는데...

 

 

세검정 (洗劍停) : 인조반정의 세력들이 모반을 성사시키며 피 묻은 칼을 씻었다는 유래가 있는 '칼 씻은 정자'

이 정자는 내가 어릴 때는 없었으며, 또한 지금의 위치가  정자의 자리가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현재의 정자 아래쪽 바위에 건물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저  세검정 정자아래서 ( 그 땐  정자는 없었지만 ) 물놀이를 많이 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그립다.

북한산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세검정 아래 물줄기가 되어 흘러 흘러~  홍제천으로 흘러가는데,

홍제천에 얽힌 슬프고 치욕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환향녀 (還鄕女)  즉, 인조 때 청나라에 끌려간 조선여인들이 하나둘씩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정조를 잃었다는

선입견으로 천대를 받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인조는  어명을 내린다.

조선처녀가 돌아오는 길목 '세검정 ~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도성으로 들어오면 그 모든 치욕이 없어지며,

누구도 그 여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 그 깨끗했던 물이 추하게 야위었다 )

 

 

교가가 떠오른다  '서울에 자문 밖~ ♬ 세검정은요~ 예로부터 이름난 고장이라오~♪  산 높고 물 맑은 승지인데다~♩"

 

 

세검정 바로 건너편에 소림사(小林寺) 사찰이 보인다

상당히 유명한 고찰인데,  시간이 없어 멀리서 사진만 찍었다 ( 아침을 열었던 소림사의 새벽종소리는 건너편 인왕산 중턱

내가 살고 있는 작은집에까지  종소리 여운의 은은함까지 들려왔는데... 그 소리도 그립다  )

   

 

상명대학교 입구 교차로에 있는 세검정 고장의 상징물

검정색 대리석엔 자하문 밖 세검정 고장의 볼거리에 대한 안내가 적혀있다 ( 아래처럼 ) 

 

 

석파정은 상징물에서  바로 50미터 지척의 거리에  있는데 시간이 없다고 그냥 생략하잖다 ( 마님께서 )

 

 

 

홍지문 ( 탕춘대 성으로 이어지는 문 ) 인왕산과  북한산 끝 줄기가 만나는 교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홍지문 ( 어릴적엔 '물문'이라고도 불렀다 ) 이 문과 이어지는 5개의 水門을 일컬어 말한 듯.

( 복원 전후의 성문 석벽 색깔이 뚜렸하게 구분된다,  60년대엔 저기 둥그런 문 아래에 막걸리 장사도 있었다 ) 

 

 

홍지문에서 홍제천을따라 20분정도 걸으면 '옥천암'이 나온다

 

 

어린시절에  듣기로는 이 절은 고려때 창건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무슨??? 옹주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여기서   불공을 드려서 아기를 얻었다는 전설도 들었었고,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안내나 흔적은 없었다 

 

 

 

 

 

 

물론  60년대 어릴적에 많이 왔던 곳이지만,  종,  목어, 북 등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전신이 하얀색 불상이지만,  예전엔 佛畵에 적용되는 총 천연색으로 화려했었다.

 

 

그때의 마애좌상엔  지금처럼 햇빛가리개? ( 선바이저? ) 같은 나무로 만든 창살이 없었는데...

앞 시선을 부분을 제외한 머리 좌우부위에 나무로 만든 창살커버가 쳐져있고 ( 훼손방지 용인가? ) 

 

 

 

 

불교신자가 아닌 나도 모자 벗고 엎드려 다섯번 절을 했다  ( 지금까지 이런적은 없었는데 ) 

어린시절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뭔가 표현할 수 없는 찡한 감정이 들면서 그렇게. 

 

 

 

 

 

옥천암 앞으로 홍체천이 흘러가고 있다

그당시  여기서도  맑은 물에 깨 벗고 물놀이를 많이 했다 ( 부처님에게만 내 고추 보여준다고 웃으면서..ㅎㅎㅎ )

추운 겨울날,   세검정에서  문화촌 홍제동 시장까지 걸어서 가던 그 시절에

'옥천암' 근방에서 유난히 찬 겨울바람이 불었던 이유를 오늘 알았다 ( 인왕산  북한산 경계의 홍제천 바람이란 것을 )     

 

      3월 18일 오늘, 구기터널 입구에서부터 ~ 문화촌까지 1시간 반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