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동안 ♣

흔들릴 때마다 한잔

달컴이 2007. 5. 4. 23:01

흔들릴 때마다 한잔 / 감 태 준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뒤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례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도 꿈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그어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수없이,

다만 다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쳐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