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자연철학에 관한 대화록 `티마이오스`는 모든 사건에 아이티에(aitia·원인)가 있음을 상상한다. 아이티에라는 단어는 `어째서 존재하는가`라는 궁극의 물음을 단어 속에 이미 함축한다. 신화처럼 기억되는 기원전에도 자연법칙을 해독하려는 인간 욕망은 저토록 선명했다.
위의 질문을 `어째서 움직이는가`로 바꿔보자. 기원전 5세기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세계 내 존재는 누스(nous·지성)라는 추상 개념의 무한한 운동으로 생성되고 또 움직인다고 이해했다.
존재는 정지하지 않고 늘 이동한다. 정지한 듯 보이는 사물도 실제로는 운동을 지속한다. 이건 바로 누스 때문이다. 대상과 사물의 구조 형성에 논리적 한계가 없다면 우주에 있는 세상은 지구만은 아니게 된다. 성층권 바깥에 나가보지 못한 당시 인류가 `다른 별`을 상상했음은 인류의 거대한 첫걸음이었다.
고대의 정신적 탐험가 아낙사고라스처럼 상상력은 인류를 움직였다. 책 `비욘드`는 20만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등장한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탈출해 어느덧 중력가속도를 이겨내는 공식을 만들고 달을 밟기까지의 여정과 동행하는 책이다. 한 손에 고고학을, 다른 한 손에 생물학을 들고 인류의 발걸음을 더듬던 저자는 우주공학까지 움켜쥐며 인류의 뒤안길을 해부한다.
크리스 임피 지음, 곽영직 옮김, 시공사 펴냄
유전공학 기술로 해독된 한 조각 뼈는 고대 인류의 목적지와 도착지를 암시하는 내비게이션과 같다. 6만5000년, 인류는 대륙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인간은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 불리는 아라비아반도에 이르고자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했다. 바다를 건넌 그들은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졌고, 누군가는 시베리아 툰드라를 지나 베링해협 어딘가를 서성였을 것이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이르기까지 몇천 년,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남쪽까지 또 수천 년이 필요했다.
조상들이 작은 배로 대서양을 건너는 위험을 감수한 까닭은 핏줄 속 유전자 영향이었다. `DRD4`란 유전자는 도파민을 통제하는데 DRD4가 변이된 `7R` 유전자 보유자는 통상 위험을 감수하길 즐긴다고 한다. 물론 모든 인간이 7R 유전자를 지녔다면 스릴을 만끽하는 성격 탓에 인류의 씨가 말랐겠지만 엉뚱한 탐험을 즐기는 인류는 가끔 등장했고 그 힘이 인류 여정을 추동했다.
기원후 인간이 탐험에 매혹된 사실은 분명하다. 중국 명나라 관리 완후는 우주에 가겠다며 거대 화약 47개를 부착한 대나무 의자에 앉아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그는 커다란 연기와 엄청난 폭음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인류의 무모하고 소모적이던 상상력은 뉴턴의 1687년 대작 `프린키피아`에 이르러 일대 혁명을 이룬다. 중력법칙과 운동법칙을 발견해 지상과 하늘을 하나의 물리법칙으로 통합하면서 인류는 지구 탈출 속도를 계산해내기에 이르렀다.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다. 그러나 요람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명언을 남긴 구소련 물리학자 치올코프스키는 연료 연소로 인한 질량의 변화와 분사하는 기체의 속도 관계를 방정식으로 정의 내렸다. 냉전시대에 이르러 미국과 소련 간 우주전쟁은 핵무기 탑재 인공위성 경쟁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신장 157㎝인 유리 가가린은 작은 키 덕분에 우주인으로 선발돼 인류 최초로 지구 궤도로 돌았고 케네디 대통령은 24명을 우주로 쏘아올려 12명을 기어코 달의 표면을 밟게 했다.
코로나 쇼크로 좀 힘들어지긴 했다지만 `미래주의자` 리처드 브랜슨이나 일론 머스크 등은 인류의 다음을 상상한 영웅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저들은 화성을 인간이 호흡 가능한 지구 대기처럼 바꾸는 테라포밍(terraforming)까지 상상해냈다. 극지방에 얼어붙은 이산화탄소를 녹여 온실효과를 강제한다거나 소행성을 충돌시켜 온도를 높인다는 `미친 상상력`을 말뿐인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줄어드니 말이다. 로켓 속으로 `증발`한 완후의 후예가 모여 사는 중국은 우주 최강대국 지위 찬탈이 확실해졌다. 인류의 다음 여정은 어디일까.
통나무배를 꽉 부여잡고, 고작 몇십 ㎞의 해협을 건너려 하나뿐인 생을 담보로 걸어야 했던 인류는 이제 행성 하나를 더 가지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출처 : 매일경제 '200502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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