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의샘 ♣

指鹿爲馬와 권력에의 복종

달컴이 2020. 2. 25. 22:44





`왜 나는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유행가 가사만은 아니다. 인간은 권위 앞에, 권력 앞에 부끄러울 정도로 쪼그라든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기는 부조리사회, 비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센 사람들만의 탓은 아니다. 약한 자들의 묵인과 방조가 큰 역할을 한다.


우리가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은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대로 행하기가 어려워서인 경우가 많다. 길을 아는 것과 길대로 가는 것은 별개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바로 고약한 권력에의 나약한 복종을 보여준다. 지록위마는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부린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적으로 인정하게 한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기원전 217년, 절대권력자 진(秦)시황이 갑작스레 서거하자 권력 공백 상태가 발생한다. 환관인 조고는 이때를 틈타 거짓 조서를 꾸며 태자 부소를 죽이고, 그의 동생인 호해를 2세 황제로 세웠다. 조고는 경쟁자인 승상 이사를 비롯해 공신들을 제거하고, 승상이 되어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부당한 권력을 차지한 사람은 늘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는 법이다. 조고는 자신에게 반대할 사람을 미리 알아내고자 꾀를 낸다.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馬)"이라고 한다. 황제가 어리둥절할 때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분해 숙청 기준으로 삼은 것. 눈을 부라리며 진실을 말하지 못할 위압적 분위기를 조성함은 물론,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들은 어떻게든 죄를 덮어씌워 처벌했다. 그러자 조고의 명령에 반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권력에 대한 복종을 보여주는 역사 속 이 장면은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1961년 진행한 가짜 전기충격실험을 연상시킨다. 그는 학생과 교사 역할을 하는 실험 대상자를 모집한 후, 퀴즈를 내게 해 교사 역을 담당하는 피실험자에게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V(볼트)에서 450V까지 전압을 올려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했다(학생은 실험을 도와주기 위한 협조자이고, 전기충격도 실제로는 가하지 않았다). 이 실험의 목적은 명령이란 권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였다. 단지 문제에 답을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전기충격을 가하란 명령에 참가자들은 얼마나 복종할 것인가. 밀그램은 실험 전에는 단지 0.1% 만이 450V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 예상했으나 실제론 참가자의 65%가 한계치까지 전압을 올렸다.

유사 실험에서도 이 같은 결과는 반복됐다. 인간은 고약한 권력 앞에 나약하게 무너진다. 그러고선 자신의 비겁함을 외부 상황 탓으로 돌려 합리화한다. 알고 보면 악(惡)함을 확대 재생산하도록 하는 것은 나쁨이나 무지가 아니라 약(弱)함이다.

                                              출처 : 매일경제'200225 (김성회 숙명여대 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