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의샘 ♣

사람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방법

달컴이 2019. 12. 5. 22:57




1963년 큰 파장을 불러온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바로 당시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에 관한 행동의 연구`다. 해당 논문의 바탕이 된 실험은 다음과 같이 실시됐다. 실험마다 두 명의 참가자가 있고, 이 중 한 명이 학생 역할, 다른 한 명이 교사 역할을 맡았다.

전자는 의자에 묶인 상태에서 단어를 외우고, 후자는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이 단어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했다. 최소 15V부터 최대 450V까지 전압이 올라가는 해당 실험의 결과는 인간이 복종을 당했을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사전 예측과는 다르게 교사 역할을 한 참가자 중 65%가 감독관 지시에 따라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물론 학생 역할을 한 사람은 배우였고, 실제로 전기가 그에게 가해지진 않았다).

이런 잔인한 연구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밀그램이 스스로가 피실험자가 됐을 때 "죽을 것 같았다(I actually felt as if I were going to perish)"고 말한 실험이 있다. 바로 1970년대에 진행된 일명 `지하철 연구`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말을 듣고 해당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연세가 많은 그의 어머니는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아무도 내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어"라고 불평을 토로했다. 이때 밀그램은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하면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다. 그리고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는 대학원생들을 모집해 연구 대상자들이 뉴욕시에서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을 타 무작위로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봤다. 이때 68%의 사람들이 흔쾌히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피실험자들에게는 해당 실험이 일생 최대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런 실험 대상자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던 밀그램은 직접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그는 엄청난 불편함과 두려움에 싸여 자리를 내달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몇 번의 시도를 해야 했다. "죽을 것 같았다"는 말이 과장되거나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복종에 관한 행동의 연구`처럼 권위자가 있는 상황도 아닌데, `지하철 연구`에서 피실험자들은 트라우마를 왜 느꼈을까. 그 이유는 미국 컬럼비아대 동기과학센터 부소장인 하이디 그랜트의 저서 `사람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방법(Reinforcements : How to Get People to Help You)`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랜트 부소장이 제시한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도움 요청을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본인의 요청을 상대방이 거절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을 꺼려한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혼자 일을 할 수 없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타인의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본인이 가진 두려움을 깨고 어떻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잘 구할 수 있을까.
그랜트 부소장에 따르면 가장 성공적인 방법은 `얼굴을 마주하며 도움을 요청하기`다. 그에 따르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상대방이 도움을 거절했을 때의 마음의 짐(cost)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거절당할까봐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하지만 반대로 당신이 누군가의 도움 요청에 "미안합니다. 이 부탁은 들어주기 어렵네요"라고 답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도움을 요청한 사람과 원수지간이 아닌 이상, 속으로 미안해 하고 기분이 좋진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랜트 부소장은 대면으로 들어오는 요청에는 사람들이 이메일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도움을 요청받을 때보다는 해당 부탁을 거절할 확률이 감소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랜트 부소장은 개인이 도움을 요청할 때 상대방이 해당 요청 사항을 들어줄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단순히 "무엇을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요?(can you do me a favor?)"라고 묻는 것이다.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말의 효과는 2010년 발표된 바네사 본스 코넬대 교수와 프랜시스 플린 스탠퍼드대 교수가 공동 집필한 논문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어?(Why Didn`t You Just Ask? Underestimating the Discomfort of Help-Seeking)`에서 증명됐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은 뉴욕의 기차역 펜스테이션에 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연구 대상자들은 두 가지 질문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첫째 질문은 "실례합니다, 설문조사에 참여해주실 수 있으실까요?"였고 둘째는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였다.
어떤 질문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설문조사 응답률이 더 높았을까.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말에 84%가 설문조사에 참여했고, 첫째 질문에는 해당 말을 들은 사람 중 57%가 설문조사에 참여했다(물론 이도 상당히 높은 응답률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살아간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랜트 부소장은 `도움 주기의 역설`을 꼬집었다.

앞서 말한 대로, 개인이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이유는 마음의 짐을 지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 해당 사람은 갇혀버린 느낌이 들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도와달라고 지시하거나, 억지로 도와줘야 한다는 느낌이 들거나, 아무런 선택권 없이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에서 개인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자신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타인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때 해당 사람이 누군가의 강요에 따라 도움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출처 : 매일경제'191205  윤선영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