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 미국영화의 심장인 아카데미를 정복했다. 영어 콘텐츠만 소비하며 자막 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북미 지역 영화 관객들에게 기생충이 새로운 이정표를 남긴 셈이다.
`기생충`은 `장르로서의 봉준호`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전 가족이 실업자인 기택(송강호)네가 박 사장(이선균) 집으로 위장 취업하는 과정을 그렸다.
3악장 같은 리드미컬한 구성을 통해 코미디, 스릴러, 호러를 버무렸다. `냄새`와 `선(線)` 같은 메타포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극복 불가능한 빈부격차를 비판했다. 특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하는 플롯이 영미권 관객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치 하나의 테이크처럼 느껴지는 완벽한 촬영 기술을 과시한 `1917`을 제치고 `기생충`이 대상을 받은 데도 `새로운 스토리텔링 기법`이 큰 영향을 미쳤다.
외국어 영화라는 한계를 넘어 전 세계 영화팬들이 `기생충`의 배우, 포스터, 노래 등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끊임없이 패러디하며 `놀이문화`로 소비하도록 한 SNS 활용 역시 `기생충`이 세계를 정복한 비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전 세계 SNS는 `기생충`에 관한 포스트로 뒤덮였다. 시상식 직후인 9일(현지시간) 저녁 전 세계 실시간 트위터 검색어가 1위 `오스카`, 2위 `기생충(Parasite)`, 7위는 `봉준호`일 정도로 `기생충` 관련 포스트는 큰 인기를 얻었다. 미국에서는 영화 내에 등장하는 `짜파구리`나 `제시카송` 등이 소셜미디어상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극 중 장혜진이 요리하는 한우 짜파구리 `먹방` 열풍도 일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10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관전하면서 짜파구리를 먹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외신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에 `찬사`를 보냈다.
뉴욕타임스(NYT)는 `역사적인 승리(a historic victory)`로 평했다. NYT는 "오스카의 92년 역사가 일요일 밤 산산조각 났다"며 "한국의 `기생충`이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비영어권 작품이 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배우·자본 모두 할리우드와 무관한 점을 들어 최근 아카데미의 시선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USA투데이는 "영화사에 흔적을 남길 빛나는 예술작(splendid work of art)"이라고 극찬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동안 "백인 위주의 영화 콘텐츠에만 시상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SNS상에서 `기생충`에 대한 지지가 쏟아지는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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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동경하던 그 소년…할리우드 동경의 대상 됐다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바로 마틴 스코세이지가 한 것입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아카데미(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51)은 미국 명장인 스코세이지를 일으켜 세웠다. 봉 감독은 "내가 학교에서 마틴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던 사람"이라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상을 받은 것도 너무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오른 쿠엔틴 타란티노, 토드 필립스, 샘 멘데스 등과 상을 나눠 갖고 싶다고 했다. "오스카가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톱으로 다섯 조각으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영화에 삶을 바친 `시네필` 봉준호다운 수상 소감이었다. `한국 처음` `아시아 최초` `세계 영화사의 전기`란 평가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봉 감독은 자신을 키운 거장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박태원의 외손자인 봉 감독은 어릴 때부터 스토리텔링에 지대한 관심을 키워왔다. AFKN 채널로 영화를 보면서 존 카펜터, 브라이언 드 팔마, 샘 페킨파 감독 작품을 섭렵했다. 연세대 사회학과에 진학한 그는 영화동아리 `노란 문`을 만들어 습작을 시작했다. 아울러 대학신문 `연세춘추`에 만평을 게재하며 날카로운 사회 감각을 길렀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고 일컬어지는 봉준호의 작품 세계는 `소설가의 외손자`이자 `좌절한 만화가`, 그리고 `시네키즈`였던 그의 정체성이 혼합된 결과물인 셈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 `지리멸렬`(1994)에서부터 사회 병폐를 유머러스하게 꼬집는 블랙코미디로 주목받았다. 상업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는 흥행하지 못했지만 거물 제작자 차승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평단과 관객에게 봉준호란 이름을 각인시킨 `살인의 추억`(2003)은 차승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탄생한 것이다.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하고서도 봉 감독은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차기작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일을 해야죠. 저는 20년 동안 일을 해왔어요. 오스카, 칸에서 상을 받기 전에 준비하던 작품이 두 개 있는데요. 이 상이 계기가 돼서 그 계획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전 세계 영화에서 자양분을 흡수하며 자란 그는 반대로 한국영화가 해외에서 저평가받는 상황에는 아쉬움을 드러내왔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보다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수상 소감이 나온 맥락이다. "그때 제가 했던 수상 소감은 때늦은 게 아니었나 싶어요. 장벽은 이미 부서지고 있었거든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으로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어요." `화이트 오스카`란 오명을 깨려는 미국 영화계에 감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은 뒤 그는 "이 부문 이름이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바뀌었는데, 명칭이 바뀐 뒤 처음 상을 받게 돼 기쁘다"며 "그 이름의 변화가 상징하는 바와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 취지에 박수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할리우드를 꿈꾸며 큰 시네키즈 봉준호를 이제 할리우드가 동경한다. 최근 미국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그의 `기생충` 밑그림을 소개하며 창작법에 주목했다. 이날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쏟아진 "어떻게 하면 할리우드 심장을 강타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적인 것"이라고 답했다. "제가 이전 작품 `옥자`에서 한국과 미국 프로덕션을 합쳐서 작업했는데요. 이번 `기생충`은 반대로 순전히 한국적인 것으로 가득 채웠죠. 제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을 둘러봤을 때 전 세계를 매료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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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화에 솔직한 의견을 아끼지 않은 한국 관객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으로 호명된 후 무대에 오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62)은 한국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봉준호 감독을 향해서는 "당신 자신이 되어줘서 감사한다"고 말했다. `기생충` 책임 프로듀서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온 이 부회장은 "나는 봉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의 미소, 머리 스타일,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을 좋아한다"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의 유머 감각이다.
그는 자신을 유머 소재로 잘 삼으며, 절대 스스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자신의 남동생인 이재현 CJ 회장(60)에게도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언제나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1995년 영화사업에 처음 뛰어든 이래 꾸준히 아티스트를 키워온 이 회장과 이 부회장이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석권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한다.
이 부회장과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2003)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CJ와 함께하지 않은 `괴물`(2006)을 1000만 영화로 만든 봉 감독은 다시 이 부회장과 손잡고 찍은 영화 `마더`로는 300만 관객을 밑돌았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대한민국의 모성신화가 어떻게 `괴물 같은 마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려낸 감독의 시선에 감탄해 이때부터 봉준호 서포터를 자처하고 나섰다. 당시 `마더`가 프랑스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자 이 부회장은 직접 칸까지 날아가 세계 엔터테인먼트 인맥을 활용한 홍보 활동을 펼쳤다.
이날 작품상이 발표된 직후 톰 행크스, 레벨 윌슨, 샬리즈 세런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은 이 부회장을 향해 "업(up)"이라고 연달아 외치며, 무대 위에 올라가라고 권유했다. 모두 이 부회장과 할리우드에서 두터운 친분을 맺은 인물들이다. 특히 샬리즈 세런은 이 부회장과 `친절한 금자씨`의 미국판 리메이크를 논의 중이기도 하다.
봉 감독이 첫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2013)에 도전하는 데도 CJ가 함께했다. 할리우드 스타가 대거 출연한 이 작품은 예산이 400억원으로 계산되자 다수 투자자가 참여를 꺼리며 제작에 난항을 겪었다. 이재현 회장은 이에 제작비 전액을 CJ에서 담당하기로 결단함으로써 봉 감독이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캠페인에서도 봉 감독과 CJ의 공조가 돋보였다. 아카데미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8000여 명 투표를 통해 후보작과 수상작을 선정하기 때문에 `홍보전` 역할이 큰 시상식으로 꼽힌다. 한국 영화계엔 해당 경험이 부재하기 때문에 `기생충` 팀은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북미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CJ는 여기에 100억원가량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미경 부회장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생리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오스카 프로모션을 지원사격했다. 그는 CJ가 1995년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 드림웍스 설립에 3억달러를 투자할 당시 핵심 역할을 하며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할리우드 핵심 인사들과 관계를 다져왔다. 오피니언리더 대상 타깃 시사회를 통해 북미에 입소문이 번지도록 유도했다. 영화에 나오는 복숭아와 수석을 투표인단에 보내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낙수로 바위에 구멍 뚫기처럼 도전했던 홍보전이 북미 시장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막으로 영화 보기를 꺼려하는 미국인들이 `기생충`에 열광했고, 상영 극장은 3개에서 1060개 관으로 늘어났다. 지난 8일(현지시간)까지 `기생충`의 북미 매출은 3437만달러로 비영어 영화 중 6위다.
이재현 회장은 "영화 `기생충`은 전 세계에 한국 영화의 위상과 가치를 알리고 문화로 국격을 높였다"며 "`기생충`과 같은 월드클래스 작품을 더욱 활발히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출처 : 매일경제 [LA = 박창영 기자 / 서울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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