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동안 ♣

코로나·사스·에볼라·메르스 공통점은?…박쥐에서 시작됐다

달컴이 2020. 2. 15. 23:53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전염)`은 홍콩발 전염병을 다뤘다. 영화 마지막은 `과일박쥐 수십 마리가 배설한 똥을 가축 돼지가 먹고 이 돼지를 요리한 셰프가 홍콩에 출장 온 베스(귀네스 팰트로)와 악수`하면서 끝난다. 전염병 발원지를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감염된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홍콩과 미국에 이어 세계 각국으로 퍼져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동물에서 사람에게 전파된 바이러스 감염병 위험성을 경고한 이 영화는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COVID-19)와 너무나 닮아 있다. 이처럼 그동안 발생한 신종 전염병 중 약 75%는 동물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전파된 바이러스를 `사람 감염 바이러스`, 전문 용어로 `인수공통전염병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대표적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전염되려면 `종간 장벽(species barrier)`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돌연변이나 바이러스 간 재조합을 통해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사람 바이러스로의 변종은 원래 그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자연숙주 동물이 아니라 매개체 동물 몸속에서 일어난다. 바로 이 중간 매개체가 철새류, 특히 오리류와 박쥐류다.


날개를 가진 이들 야생동물은 비행 능력을 갖고 있지만 오랫동안 사람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인구 급증과 도시 개발로 야생동물과 인간이 접촉할 기회가 늘어났다. 오지 원주민이 과일박쥐를 직접 사냥하거나 또는 과일박쥐와 접촉한 가축 등 중간 매개체 동물을 통해 과일박쥐가 보유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염됐다.

아프리카 에볼라바이러스, 중국 남부 지역에 출현한 사스가 이 같은 사례에 속한다. 또 재배법 발달로 과수 생산이 풍족해지면서 굶주린 야생 박쥐를 인간 사회로 유인하고 있다. 1998년 말레이시아 양돈장 축사 사이에 심어 놓은 망고나무, 2000년 중반 방글라데시와 인도 마을 주변에 심어 놓은 대추야자가 야생 숲속에 있는 과일박쥐를 끌어들였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잦은 산불과 무분별한 개발도 서식지를 잃은 박쥐를 인간의 생활 영역으로 몰아넣어 바이러스를 전파시키고 있다.

동물전염병 전문가인 최강석 박사(`바이러스 쇼크` 저자)는 "서식지를 잃은 과일박쥐가 먹이를 찾아 인간 마을로 들어와 과일을 먹게 된다"며 "양돈장을 출입하던 과일박쥐가 먹다 남은 망고 조각을 돼지가 먹음으로써 바이러스가 돼지로 감염되고, 감염돼지는 다시 농장 인부를 감염시키는 양상으로 전이된다"고 설명했다. 사람에게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는 바이러스를 인간이 자초했다는 얘기다.

중국 남부에서 발생한 사스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퍼뜨린 범인 역시 박쥐였다. 처음에는 사향고양이를 바이러스 전파의 원흉으로 생각해 소탕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수년간에 걸쳐 발생 지역 주변 가축이나 야생동물을 조사한 뒤 진범이 `중국관박쥐(중국말발굽박쥐)`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메르스 역시 사람들이 살다가 버린 폐가에서 서식하던 `이집트무덤박쥐`가 전파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지구상에는 포유동물이 5000여 종 서식하고 있는데, 이 중 박쥐종은 1240여 종으로 전체 포유동물 종 중 25%를 차지한다. 박쥐 코로나바이러스만 해도 현재 유전자은행에 등록된 자료만 2800여 개에 달한다. 약 5250만년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는 박쥐는 수명이 최대 50년으로 길고, 일부 박쥐는 2000㎞를 이동할 수 있어 바이러스 전파의 온상이 돼왔다. 수많은 박쥐종이 광견병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어 박쥐에 물리거나 접촉한 뒤 또는 박쥐로부터 감염된 개·너구리 같은 2차 동물에 물린 뒤 공수병에 걸려 매년 5만5000명이 사망한다.

박쥐는 수백만 마리가 집단으로 먹이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가축이나 야생동물과 접촉할 개연성이 크다. 중국에서는 박쥐와 접촉할 가능성이 높은 닭, 오리, 심지어 돼지를 아파트처럼 밀집된 공간에서 사육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여러 종 가축이 서로 접촉하며 살아가는 환경은 다양한 바이러스가 뒤섞이게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감염되면 신종 전염병으로 진행될 수 있다.

특히 야생조류와 가금류, 돼지 간 빈번한 접촉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중국 광둥 지역에서 1957년 아시아독감(H2N2), 1968년 홍콩독감(H3N2)이 발생한 배경도 돼지와 오리를 개방된 공간에서 사육하는 환경에 있었다. 돼지 몸속에서 오리 바이러스와 돼지 바이러스가 뒤섞이며 사람에게 감염되는 독감 바이러스가 생성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출현해 올해 벽두부터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는 야생박쥐 바이러스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 우한 재래시장(야생동물 판매 가게)에서는 진미 요리로 각광받는 야생동물 수백 종이 현장에서 도축돼 거래되고 있다. 당나귀, 양, 오소리, 쥐, 고슴도치, 뱀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닭이나 오리, 야생조류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바이러스가 뒤섞일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2013년 중국 상하이에서는 생닭이나 생고기를 만지는 과정에서 H7N9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1568명이 감염됐고 이 중 766명이 사망했다. 다행히 2017년 가금류에 H7N9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진정됐지만 또다시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날 여지는 항상 도사리고 있다. 중국 재래시장은 신종 바이러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거점 지역인 셈이다.

최 박사는 "신종 바이러스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예측하지 못한 경로를 통해 새로운 병원체가 문제를 일으킨다"며 "앞으로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허술한 사각지대의 틈을 통해 제2, 제3의 코로나19가 출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코로나19 감염 경로는…박쥐→천산갑·밍크·뱀→인간 감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숙주인 박쥐에서 발원한 뒤 중간 매개체(중간 숙주)를 통해 인간에게 옮겨진 것으로 파악됐다. 중간 매개체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학계는 천산갑과 밍크, 뱀 등이 유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화난농업대 연구진은 지난 7일 "천산갑에서 분리한 바이러스 균주 샘플과 코로나19의 유전체 염기서열이 99%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천산갑이 코로나19의 중간 매개체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추정일 뿐이지만 실제로 천산갑은 코로나19와 유사한 바이러스의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포유류의 일종인 천산갑은 중국에서 단단한 등껍데기가 남성의 정력에 좋다고 알려져 불법적으로 밀매되고 있는 야생동물이다. 멸종위기종으로 국제적으로 거래가 금지돼 있지만 여전히 일부 중국인들은 천산갑탕, 천산갑 껍데기 볶음밥 등을 보양식으로 먹고 있다.

주화이추 중국 베이징대 교수 연구진은 박쥐와 밍크에서 각각 분리한 코로나바이러스 균주와 코로나19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비교분석한 결과, 사람을 감염시키는 코로나19의 경우 박쥐에서 유래한 균주보다 밍크에서 유래한 균주와 유사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바이러스가 숙주인 박쥐에서 밍크를 거쳐 사람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 과정을 미뤄볼 때 유력한 중간 매개체는 뱀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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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동물과 사람을 모두 감염시킬 수 있는 인수 공통 바이러스는 여러 종류의 숙주를 거치면서 생긴다. 박쥐 같은 숙주에서 곧바로 사람으로 전염되는 바이러스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대부분 호흡기 내 세포에 결합하는 단백질 부위가 변형되면서 이종 간에 감염을 일으킨다. 바이러스의 결합 부위는 바이러스가 갖고 있는 유전자에 따라 형태가 결정된다. 그런데 중간 매개체 안에서 바이러스의 DNA 일부가 다른 DNA 절편과 섞이면서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나면 그 과정에서 사람의 호흡기와도 결합 가능한 바이러스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2002년 처음 등장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SARS-CoV)는 숙주인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를 거쳐 사람에게 전염됐다. 사향고양이는 식용으로 먹기도 하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루왁(인도네시아어로 `사향고양이`라는 뜻) 커피를 만드는 데도 활용된다. 루왁 커피는 사향고양이가 먹은 뒤 소화기관을 통과한 커피 열매로 만드는 커피로 고소한 풍미 덕분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015년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MERS-CoV) 역시 숙주인 박쥐에서 중간 매개체인 낙타를 통해 유전자 재조합을 거친 뒤 낙타와 접촉하는 사람을 감염시켰다.

문제는 이렇게 이종 간 감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강력한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 확률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화학연구원 신종 바이러스(CEVI) 융합연구단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는 박쥐에서 유래한 사스와 96.3%의 유사도를 보였다. 이는 사스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변이로 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 코로나19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코로나19의 변종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파력이 강한 특성을 고려할 때 또 다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유행한 여러 차례의 조류인플루엔자(AI) 사례를 보면 치사율이 높은 신종 AI 바이러스는 여러 종을 거치면서 탄생했다.

예를 들면 숙주인 칠면조에서 돼지로 옮긴 바이러스 A가 돼지 몸속에서 변이를 일으켜 새로운 변종(A`)을 만들고, 이 변종이 사람에게 전달돼 또 다른 변종(A``)을 만들어낸다. 다시 이 변종 바이러스가 돼지로 옮겨 A`와 A`` 등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바이러스가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새로운 변종(A```)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A형 바이러스는 H1N1부터 H10N7까지 총 20종으로 늘었다. 보통 조류인플루엔자는 가금류 사이에서 전파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H7N9의 경우 2013~2014년 중국, 홍콩 등에서 사람을 감염시켜 127명의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출처 : 매일경제 '200215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 송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