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로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가 된 30대 청년의 모습은 어떨까. 청년 자산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멋진 외제차에 명품 시계, 명품 옷 하나쯤은 걸쳤을 것이라고 상상도 해 봤다. 인터뷰 시간이 가까워 오자 약속 장소인 대구 수성구의 한 카페에 그가 나타났다. 까만테 안경에 백팩을 멘 수수한 옷차림의 청년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다소곳한 걸음으로 기자에게 다가온 그는 "안녕하세요. 기자님이시죠"라고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20대 초반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해 불과 몇 년 만에 주식 부자가 됐으며 이제는 '청년 기부왕'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박철상 씨(32)다.
박씨는 지난 9년간 20억원이 넘는 자산을 기부했다. 주식 투자로 자산가가 된 비결도 그렇지만 매년 수억 원을 선뜻 기부하는 사정도 궁금하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사양해 왔지만 매일경제신문 인터뷰에는 흔쾌히 응했다.
― 언론 인터뷰는 잘 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요.
▷ 인터뷰나 방송 출연 제의를 많이 받는 편이지만 대부분 정중히 거절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수락한 것은 전체의 10%가 채 되지 않죠. 제가 인터뷰나 강연을 하는 유일한 목적은 기부문화가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죠.
―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에 빗대 '청년 버핏'이란 별명도 있는데.
▷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겉치장이나 수사(修辭)는 불편해요. 지금은 주식 투자도 그만뒀으니 앞으로 그런 별명은 안 붙였으면 해요(웃음).
― 투자 강연 요청도 많이 들어오죠.
▷ 네, 많이 들어와요. 대부분 큰 금액의 강연료를 제시하죠. 하지만 저는 공익 목적에 한해서만 강연을 해요. 주로 고등학생,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물론 학생들에게 금융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죠.
― 지금까지 얼마나 기부하신 건가요.
▷ 약정이 아닌 현재까지 실제로 전달한 기부금만 9년간 20억원 정도예요. 모교인 경북대와 대구지역 고등학교 4곳에 제가 출연한 발전기금으로 9개의 장학기금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약 600명의 장학생에게 9억원을 지급했어요. 이외에도 의료기금, 위안부 할머니, 취약계층 등에도 기부를 했어요. 올해 봄에 10번째 장학기금이 완성되면 매년 8억원 이상을 정기적으로 기부할 계획이에요.
― 장학금 출연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 학생이 경제적인 제약으로 꿈을 꿀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면 그건 사회와 공동체의 연대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는 부모님 잘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는데 누구는 그러지 못해 기본적인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너무 불공평한 사회잖아요.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 결정된다고 봐요. 그 시기에 학생들이 좀 더 세상을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거죠.
― 학생들에게 감사 편지도 많이 오겠네요.
▷ 손편지나 이메일 같은 건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이 받아요. 제 연락처나 메일 주소를 모르기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해 받죠.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제 입장에서는 고맙기도 하고 책임감도 많이 느껴요.
― 박철상 씨 이름을 딴 장학금은 하나도 없는 것 같던데.
▷ 저는 장학생으로 선정되는 후배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박철상'이라는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지 말고 사회에 고마움을 느끼라는 얘기죠. 이 친구들이 나중에 사회인으로 성장했을 때 그 고마움을 어려운 주위를 살피는 데 갚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장학기금 명칭은 학생들에게 공모를 받아 짓고 있어요.
― 장학생 선발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 제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직접 면접을 보고 선발합니다. 선발할 때는 세 가지 기준을 고려해요. 먼저, 경제 형편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 친구들이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자기 역량 쌓을 시간을 찾아주기 위해서죠. 또 하나는 학업으로 드러나든 어떤 일에서 드러나든 그 친구가 열정과 의지가 있는지를 살펴봐요. 단순히 형편이 어렵다고 장학금을 주는 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거든요. 마지막 하나는 이 친구들이 장학금을 받은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인이 됐을 때 과연 같은 역할을 줄 수 있는지를 봐요. 처음에는 이 선발 기준이 모호해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장학생들이 잘 선발되고 있어요(웃음).
― 장학재단은 안 만드세요.
▷ 당장 재단 형태로 하지 않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죠. 재단을 만들면 고정 자산이 묶이고 이자 수익으로밖에 기부를 못하기에 지원 규모가 작아져요. 지금처럼 저금리 상황에선 100억원 규모의 재단이라면 1년에 2억원도 지원하기 어려워요. 재단 형태는 규제나 제약도 심해요. 제가 가진 선발기준으로 장학생을 선발하려면 현재 재단 형태로는 어려움이 있어요. 물론 종래에는 장학재단이나 사학재단 등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재단을 만들면 이사장으로는 존경하는 교수님을 모시고 저는 허드렛일이나 맡아 할 생각이에요.
▷ 고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기부에 관심이 없었죠. 대입 무렵 가세가 크게 기울면서 원하던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당시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군에 가서 제가 살아온 20년 시간을 되짚어보니 큰 착각 속에 빠져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성품 따뜻한 부모님, 건강한 몸, 여유 있는 환경과 조건, 모두 제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타고난 행운들인 거죠. 어쨌든 반대로 태어날 때부터 많은 제약 속에서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 역시 무얼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경제적인 능력이 생기게 되자 그분들을 살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공군 병장으로 전역했는데 군대가 저를 철들게 한 거 같아요(웃음).
― 어떻게 주식 투자를 하게 된 거죠.
▷ 아버지께서는 왜곡된 투자 환경에 노출될까봐 중학교 3학년 때 생일선물로 증권계좌를 만들어 주셨어요. 그렇게 주식 투자를 접하게 되었고 실제 자금으로 투자를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죠.
― 아버지께서 금융업에 종사하시는지.
▷ 아버님은 공대 출신이신데 그런 분야와는 전혀 무관하세요. 어머니도 그저 평범한 주부이십니다. 주식 투자는 독학했어요(웃음).
― 성공 투자의 비결은 뭔가요.
▷ 주식을 하기 전만 해도 주식은 경제·경영에 국한된 것으로 인식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죠. 경제 정책 자체가 정치적인 이해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거잖아요. 정치나 국제관계, 심리 등 모든 게 맞물려 돌아가는 게 주식시장이더라고요. 평소에도 책을 좋아해서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서적을 많이 봤는데 주식 투자를 한 이후로는 독서 스펙트럼을 완전히 넓혔어요. 다양한 서적을 봐 왔던 게 어느 순간 시야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대학에 입학한 후로 한 해 100권 이상 읽었고, 2009년부터는 130~150권으로 늘렸어요.
― 수익률이 가장 좋았을 때는 언제였나요.
▷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직후였고 다음으로는 남부 유럽 재정위기 직후에 수익률이 높았죠. 경제 위기가 오게 되면 공포에 의한 과매도로 폭락이 발생하지만, 경기가 회복되면서 정상 가격을 빠르게 찾아가는 시점을 적절하게 이용한 거죠. 회복의 탄력성이 높은 업종과 종목에 집중 투자하면서 평상시엔 상상하기 힘든 성과를 거뒀어요.
― 성공 투자의 팁이라도 좀 가르쳐주세요.
▷ 세상에 투자 비법이니 비결이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설명할 수도 없고 알려준다고 해도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나름의 투자방법을 정립하는 데에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한데 그걸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해준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 "전재산이 얼마냐구요? 평생 기부할 만큼 아닐까요"
▷ 선문답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항상 염두에 둔 게 겸손함이었어요. 주식시장은 수많은 변수와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곳이잖아요. 여기에 대응하려면 끊임없는 공부와 분석, 노력이 수반돼야 해요.
제 좌우명 중 하나가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이거든요. '욕심이 없어야 뜻을 바로 세울 수 있고, 마음이 고요해야 그 뜻이 멀리까지 전해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즉, 담박명지는 절제, 영정치원은 평정심을 의미해요. 결국 이런 부분에서 투자의 성패가 갈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젊은 자산가로 오해의 시선도 많았죠.
▷ 처음에는 정말 억울했죠. 자는 시간 줄여가면서 어렵게 번 돈인데 오해를 받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까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건 저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불신인 거죠. 저를 오해하시는 분들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지금의 구조와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걸 자각하고 나서는 다음 세대까지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동력으로 삼고 있어요(웃음).
― 더 이상 주식 투자는 안 할 것인지.
▷ 2년 전에 주식 투자를 중단했어요. 제가 평생 지원사업을 하는 데 계획했던 금액이 있었고 그것이 재작년에 채워졌기 때문이죠. 지금은 기부 자체보다 지원이 필요한 분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 저는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모의투자를 꼭 시작하라고 해요. 모의투자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실제 자금으로 운용하는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어요. 저 역시 그런 과정을 가지면서 나름의 투자방법을 정립했어요. 처음부터 실전 투자를 하게 되면 돈을 벌고 잃는 데만 생각이 매몰돼 제대로 된 투자법을 정립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대학교 4년, 취업 후 2년 정도 해서 6년간의 모의투자를 통해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보라고 하죠. 그 정도 기간이면 경기 순환의 한 작은 사이클을 거치거든요. 시기마다 자신이 어떤 수익률을 올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죠. 만약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꾸준한 성과를 보였다면 종잣돈으로 조금씩 실전 투자를 해 보라고 권해요.
― 부모들의 역할은 없는지.
▷ 자녀들에게 모든 사회 현상은 다양한 분야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을 인식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경제 현상 역시 마찬가지죠. 경제 교육을 위해선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양서를 탐독하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신문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해요. 가급적이면 활자 신문 보기를 추천해요. 경제신문도 꼭 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식견을 기르게 되면 경제 위기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안목이 생길 수 있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 지원 사업을 좀 더 확대하고 다져놓은 다음에 3~4년 후쯤 유학을 갈 생각이에요. 유학 후 돌아와서도 아마 평생 동안 학생들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쓸 계획이죠. 저는 개인적인 목적이나 욕심 없이도 순수하게 남을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을 제 평생을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 보여주려고 해요. 그들에게 학교에서, 또 책에서 배우는 이상과 가치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어요.
― 끝으로 박철상 씨에게 기부란.
▷ 부에는 개인적인 부와 사회적인 부가 있다고 봐요. 개인적 부는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소유한 이가 세상을 떠나면 소멸해버린다고 봐요. 반면 사회적인 부나 가치는 세대를 거듭해서 이어진다고 믿어요. 그런 점에서 저에게 기부란 이런 사회적 가치를 키워나가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인 거죠. 저는 자식에게 물질적인 부를 물려주는 것보단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욱 가치가 있다고 봐요.
박씨는 세상에서 제일 유치한 짓이 '돈 자랑'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자산이 얼마인지는 비밀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가 평생 얼마를 기부하는지를 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웃었다.
100억원은 넘느냐고 물어보니 그 금액은 넘는다고 답했다.
주식 투자와 관련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요즘에는 장학기금 운영과 강연을 다니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해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한다. 인기 강사답게 몸값이 비쌀 것 같지만 그는 강연료를 받지 않는다. 교통비 역시 본인이 부담한다. 한 달에 교통비로만 100만원 이상 쓴 적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강연도 재능 기부라는 이유에서다.
■ 박철상 씨는…
198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울산 염포초등학교, 울산 양정중학교, 울산 우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4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장학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졸업이 늦었다. 대학 입학 후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상당한 자산가가 됐다. 2015년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올해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선정됐다. 2년 전부터 주식 투자를 끝내고 현재 장학기금 운영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출처 : 매일경제170325 [대구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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