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말인데, 왜 허탈한 웃음이 나올까. 딸의 땅콩리턴으로 위기에 처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임원들 앞에서 했다는 말 때문이다. "오너와 경영진 등 상사에게도 NO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백번 옳다. 그런데 왜`그냥 허허 웃지요` 반응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것일까.
지금 대한항공 사태를 보면, 상사에게 NO할 수 없는 문화를 만든 건 오너 일가 책임이다. 땅콩 리턴 사건이 터진 이후 대한항공이 맨 먼저 내놓은 사과문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대한항공은 오너 딸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이익을 위해 직원의 양심과 인권 자존심을 가차없이 짓밟았다. 사과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사무장이 조현아 부사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다는 점,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들러댔다는 점을 들어 조 부사장이 사무장의 자질을 문제 삼았고 기장이 하기 조치한 것입니다."규정대로 서비스한 승무원을 대신해, 조 전 부사장에게 용서를 구한 사무장의 인격을 이토록 손쉽게 짓밟는데, 어떤 직원인 나서서 오너 일가와 경영진에게 `NO`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만 보면 대한항공은 직원의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경영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복종을 토대로 경영하는 회사임에 틀림없다.
지금 대한항공은 NO는 커녕 나쁜 소식을 말할 수 있는 문화도 안 된다. 허핑턴포스트와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은 지난 12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도록 누구 하나 사실대로 말해준 사람이 없었냐"며 임원들을 원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보도가 맞다면, 조 회장은 심리학계의 석학인 다니엘 골먼 박사가 진단한`CEO 병`에 걸려 있었던 셈이다. 주변에서 나쁜 소식을 전달하지 않아 CEO가 정보의 진공상태에 빠지는 게 바로 CEO 병이다. 이런 병에서 깨어나려면 나쁜 소식이 조직 안에서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너나 경영진에게 NO를 할 수 있는 문화도 가능하다. 오너 앞에서 나쁜 소식도 말을 못하는데 어떻게 NO가 가능하겠나.
조 회장이 정말로 기업 문화를 바꾸고 싶다면, 그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나쁜 소식도 적극적으로 듣겠다는 신호를 직원들에게 보내야 한다. 앨런 멀럴리 전 포드 CEO의 사례는 참고할 만 하다.
멀럴리는 포드 CEO로 취임한 뒤에 임원들에게 특별 지시를 내린다. CEO에게 제출하는 보고서에 색깔을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좋은 소식이 담긴 보고서는 녹색, 주의할 사항이 담긴 보고서는 노란색, 나쁜 소식이 담긴 보고서는 적색으로 표시하도록 했다. 물론 임원들이 처음에 들고 온 보고서는 색깔이 모두 녹색이었다. 누구도 CEO에게 나쁜 소식이 담긴 보고서를 내밀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멀럴리 CEO는 회의 때마다 임원들에게 노란색 또는 적색 보고서를 내라고 격려했다. 어느 날 회의에서 누군가가 노란색 보고서를 내고 발표를 했을 때 멀럴리 CEO는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 결과, 나중에는 적색 보고서도 심심치 않게 회의에 등장했다. 덕분에 멀릴리 전 CEO는 나쁜 소식도 접하게 됐다.
멀럴리 전 CEO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격려 등의 보상을 주라는 거다. 그러나 많은 보스는 정반대로 화부터 낸다. 그러면 직원들은 입을 닫는다. NO는 상상조차 못한다. 그저 오너 또는 경영자의 머슴으로 살아간다.
덴마크의 인슐린 기업 노보노르디스크의 사례 역시 참고할 만 하다. 이 회사는 2013년 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수출이 막힐 뻔 했다. 덴마크 공장이 미국 식품 의약국 규정을 어긴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CEO는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 수출길이 막힐 위험이 있다는 소식을 가장 늦게 접한 사람이 바로 CEO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 후에 노보노르디스크는 새로운 `소통 프로세스`를 가동한다. 조직 전문가들이 비정기적으로 전 세계 계열사를 방문해 직원들을 무작위로 인터뷰했다. 나쁜 소식이 제대로 상사나 이해 관계자에게 전달되고 있지 않으면 `경보`를 발령했다. 그리고는 이 나쁜 소식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공개했다.
NO를 말할 수 없는 문화, 나쁜 소식이 흐르지 않는 문화는 한진그룹에 국한된 게 아니다. 한국은 조직 안에서 권력이 매우 불평등하게 배분된 대표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한 학자가 조사한 권력-간격 지수가 그 증거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권력이 한쪽으로 쏠려 있고 위계질서가 강한 사회라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지수 값은 60이다. 반면 영국과 독일은 35, 스위스는 34, 덴마크는 18 등이다.
권력이 소수 몇 사람에게 집중된 조직에서 NO는커녕 나쁜 소식도 말할 수 없다. 권력이 약한 사람은 권력이 강한 사람과 대화할 때에는 항상 안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권력자에게 밉보일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아랫사람은 입을 닫거나 아부만 한다. 소수의 권력자만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놓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사무실에서는 `땅콩 리턴`과 본질이 똑 같은 사건들이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다.
솔직히 오너 일가가 그런다면 덜 억울할 것이라는 직장인들도 많다. 같은 머슴이면서 부하 직원에게 하는 행동은 `땅콩 리턴`인 수 많은 상사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 부하 직원들은 그저 자동으로 머리를 끄덕이는 `버블 헤드 인형`이 되어 갈 뿐이다. NO를 말 하라고? 그저 허허 웃지요.
출처 : 매일경제 김인수 (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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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위기대응 차이가 부른, 코오롱과 대한항공의 明暗(명암)
대한항공 '항공기 회항'
오너와 관련된 위기에 3일 동안 우왕좌왕… 어정쩡한 사과… 국민 분노
-코오롱 '리조트 붕괴'
CEO, 한밤 중 현장으로 사고 9시간 만에 직접 사과… 기업 이미지 실추 최소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위기 발생 시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전면에 나서서 진정성 있게 사과한 후 상황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것이 초기 진화(鎭火)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가장 나쁜 것은 의혹을 부정하고 설명을 회피하며 조직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우왕좌왕 3일' vs 코오롱의 '발 빠른 9시간'
조현아 전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를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함을 지르며 사무장을 내리게 한 사건은 이달 5일 오후 2시 50분(뉴욕 현지 시각으로는 0시 50분)에 벌어졌다. 대한항공이 이에 대한 입장을 처음 표명한 것은 그로부터 3일이 지난 8일 밤이었다.
전문가들은 "사과문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 표명은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는 지금 같은 시대엔 현실성이 없다"며 "이 발표문은 두고두고 위기관리 실패 표본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 이 발표문에 대해 일부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수뇌부에서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문기업에서 위기관리 실패 잦아
전문가들은 "위기관리 실패 사례는 역설적으로 잘나가는 명문 대기업, 오너 중심 경영 조직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위기관리 전문가 박재훈 PR컨설팅 대표는 "대한항공은 평소 위기관리가 잘돼 있는 회사이지만 '오너들이 관련된 위기'에는 대책 없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며 "이는 국내 기업들에서 오너가 성역(聖域)화돼 있어 오너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조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위기관리 실패의 대표 사례는 '유키지루시 유업'이다. 2000년 6월 1만5000명의 집단 식중독(食中毒) 사건이 일어나자 경영진은 원인 규명이나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없이 "행정 대응도 문제가 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잘못을 인정할 단계가 아니다" 등의 공식 입장만 반복했다. '국민 브랜드'였던 유키지루시 유업은 이 사건을 계기로 2002년 파산했다.
박태일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위기관리에 실패한 국내외 기업들을 분석해보면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과 고객 대응을 관행대로 하다가 일을 크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닷컴 호경업 (1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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