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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세계지식포럼서 만난 `행복의 나라` 부탄 지그메 틴레이 前 총리

달컴이 2014. 10. 18. 22:46






 기사의 0번째 이미지지난 14일 서울에 도착한 지그메 틴레이(Jigme Thinleyㆍ62) 부탄 전 총리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시민들의 딱딱한 표정이었다. 상점이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생동감을 잃은 듯 굳어 있었다. 1985년 그가 서울을 처음 방문했을 때와 확연히 달랐다. 

"그때는 한국이 성장하기 전이지만 밝게 인사하는 한국 분들을 많이 봤어요. 사람들 표정이 밝고 활기차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빌딩은 더 많아졌는데 웃음은 사라졌네요." 그의 관찰은 일리 있었다. 지난 3월 20일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유엔은 156개국 행복 지수를 조사했다. 우리나라는 41위였다. 한 해 GDP는 1조4495억달러(2014년 IMF 기준)로 전 세계 13위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돈은 많이 벌지만 행복은 없는 나라`다. 
10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한 오명도 비관론에 힘을 싣는다. 그런 의미에서 부탄은 한국과 대척점에 있다. GDP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행복지수는 앞서간다. 부탄은 1972년부터 `국민 총행복지수(GNHㆍGross National Happiness)`를 만들어 행복 중심의 경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의 중요성을 절감한 유엔이 `세계 행복의 날`을 지정한 게 2012년이었다. 인구 72만명인 소국이 40년 앞서간 것이다. 지난 14~16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틴레이 전 부탄 총리가 방한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하면서 부탄 GNH를 끌어올린 그는 세계에서 `행복 전도사`로 통한다. 

15일 신라호텔에서 만난 그는 "GDP에 기반한 경제 모델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본질, 행복을 놓치고 있다"면서 "이제 세계는 행복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이 공식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하기 40년 전에 이미 부탄이 GNH를 개발한 점이 놀랍다. GNH는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나. 
▶GNH는 1970년대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당시 부탄 국왕이 제안한 개념이다. 당시 나를 포함한 관료들은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호화로운 물품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를 국왕께 얘기해서 2008년 GNH지수를 만들었다. 경제ㆍ문화ㆍ환경ㆍ정부 등 4개 항목과 심리적 복지, 건강, 문화, 시간 사용 등 9개 영역을 각각 72개 척도에 따라 평가해 수치화하는 행복 측정 공식이다. 정부는 개발은 경제적 성장 그 이상을 가져와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이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게 됐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데 주력하게 됐다. GNH는 행복이 지속 가능한 `여건`을 측정하는 지표다. 

-부탄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국민 총행복지수`를 만들 때 왜 `만족`이 아닌 `행복`이란 말을 썼을까. 만족과 행복은 다르다. 서로 다 비슷해서 `만족`하는 것이 행복은 아니다. 만족은 수동적인 상태다. 부탄이 GNH를 도입하기 전 국민은 빈곤 속에서 만족했다. 그러나 삶의 수준이 너무 낮았다. 행복은 적극적인 사고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조화가 필요하다. 일과 휴식, 직장과 가족, 개발과 자연의 공존을 맞춰가야 한다. 
행복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 다 노력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이 행복할 수 있도록 이런 요소를 추구해야 한다. 부탄은 GNH를 도입한 후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연과 공존하고, 정부가 안전망을 제공하고,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맞추고 있다. 부탄에선 편리를 위해 도로를 만들려고 하다가도 히말라야 산을 파괴할 것 같으면 개발을 멈춘다. 지속 가능한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불편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더 큰 행복을 준다. 

-뒤늦게 전 세계가 GNH에 관심을 갖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경제 성장 목표에 `행복`을 명시하는 사례가 많다. 왜 이 시대 경제에서 `행복`이 화두로 떠오른 것인가. 
▶시장은 그동안 큰 성공을 거뒀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급속도로 팽창했다. 하지만 시장의 성장은 요즘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자주 발생한다. 사람들은 집과 일자리를 잃었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패배감이 커지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제 침체를 벗어났다고 하는데, 유럽이나 미국에선 우울한 신호가 감지된다.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자원은 유한한데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포럼에서 제러미 리프킨(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이 `공유 경제`를 주장한 것이 흥미로웠다. 이젠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 모델을 버려야 한다. 물질적 행복의 다음 단계를 지향해야 한다. 물질을 쫓아가다 인간의 삶은 목적의식이 없는 여정이 됐다. 파고 속에서 표류하는 배가 됐다. 의미 있는 목표를 가지고 시장을 재구성해야 한다. 

-한국에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자살 원인 1위가 우울증일 정도로 마음의 병이 심각하다. 왜 한국 사회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는데 행복은 늘지 못한 걸까. 
▶한국은 정말 놀라운 국가다. 아시아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정말 존경스럽다. 그런데 한편으로 너무 치열한 삶이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한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4시간 자거나 아예 안 잔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17시간씩 일하는 사람도 봤다. 말이 안 된다. 이것만으로도 한국이 얼마나 바쁜지 알 수 있다. 물론 한국인들은 엄청 근면하다. 그러나 충분히 자야 한다. 일은 좀 줄이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늘려야 한다. 건강을 해치고 가족과 멀어지면 나중에 후회한다. 많은 돈을 벌어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조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변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다. 타인 시선을 의식하는 것도 강하다. 
▶대만도 한국처럼 아시아에서 성공한 국가다. 그런데 대만 부자들은 명품을 안 사고 저렴한 자동차를 탄다. 얼마 전에 네덜란드에 갔는데 사람들이 비싼 차를 운전하는 것을 창피해하더라. 명품도 잘 안 산다. 그들은 내가 이걸 사면 더 많은 문제가 세상에 나온다고 생각한다. 소비할수록 쓰레기가 더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명예나 성공, 시선을 위해서 내면적 만족감을 포기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스스로 세운 가치에 따라 덜 경쟁하며 산다면 남들도 그렇게 살게 된다. 행복한 사람은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행복을 위해 당신이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명상이다. GNH를 평가하는 요소 중 하루에 얼마나 명상하는지가 포함돼 있다. 내가 말하는 명상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시간을 내서 가만히 생각하는 거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어제 내가 뭘하고 어떤 게 의미가 있었는지, 오늘 나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 어떤 일을 할지를 생각해 보자. 동료에게 친절을 베풀겠다, 출근할 때 환한 표정을 짓겠다 등.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라. 그리고 인간으로서 내가 얼마나 발전하는지를 잘 모니터링해 보자. 행복한 상태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명상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 전에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내면을 다듬는 습관은 어른이 돼서 큰 도움이 됐다. 나는 총리일 때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회사 대표처럼 위기를 관리해야 했다. 그러나 큰 문제가 발생해 스트레스를 주면 판단이 흐려져서 다른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더라. 그 문제를 흘려보내고 긴장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문제도 냉정하게 볼 수 있다. 명상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행복을 되찾고 싶은 한국인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 
▶한국인들은 충분히 경쟁력 있다. 이제 많은 것을 이루었으니 마음을 챙겼으면 한다. 무엇보다 잠을 많이 잤으면 좋겠다. 또 직장에만 두었던 관심을 가족과 친구로 돌리기 바란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요즘 곰곰 생각해 보니, 내 아내와 있을 때다. 둘이 같이 노력해서 공동의 삶을 의미 있게 꾸려나가는 지금이 행복하다. 나를 위해 그 무엇을 해줄 사람이 있고, 나를 믿어주고 사랑할 사람이 있다고 깨닫는 순간이 기쁘고 감사하다. 나는 가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친구를 만들고 가족을 만든다. 이 관계는 많은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시간을 썼을 때 그 관계가 나중에는 엄청난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한국인들이 가족과 친구를 챙기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벗을 만들고 친구에게 충성을 보여라, 이 말을 하고 싶다.


■ 행복지수 세계 1위…부탄의 비밀

세계에서 부탄은 `행복의 나라`로 통한다. 2011년 유럽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국가행복조사에서 부탄은 143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는 국민들이 삶에 만족과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지, 또 정부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정책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다각적으로 평가했다. 조사에서 부탄 국민 100명 중 97명은 `나는 행복하다`고 답했다. 
부탄 행복정책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왕은 GDP 대신 `국민 총행복지수(GNHㆍGross National Happiness)`를 국가 발전의 잣대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행복정책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것은 2008년 틴레이 총리 시절이다. 
당시 틴레이 총리는 행복 정책을 총괄하는 국민총행복위원회(GNHCㆍGross National Happiness Commission)를 만들었다. 경제 성장을 많이 해도 사람들이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 정책은 실패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각 부처 장관이 모두 참석하는 이 조직 권한은 막강하다. 각 부처에서 입안하고 집행하는 모든 국가 정책은 반드시 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예산 배분권도 행사한다. 
GNH는 공동체 활력 부문에선 기부ㆍ안전ㆍ소속감에 대한 신뢰를, 심리적 웰빙 부문에선 삶의 만족도와 영성, 시간 이용 부문은 하루 근로 시간ㆍ수면 시간 등을 조사한다. 정부는 GNH 결과에 따라 국민의 실질적인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 중장기적인 `5개년 계획`을 실시하고 있다. 
■ He is… 
△1952년 부탄 붐탕 출생 △197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졸업 △1990년 부탄 동부 지역 행정국장 △1994년 내무부 부장관 △1998년 외교부 장관 △2008년 부탄 총리 △2014년 벨기에 루뱅대 명예 학위 

                                                                                                                                                                 출처: 매일경제 /이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