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컬럼비아대의 저명한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Tory Higgins) 교수가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해온 현상이 하나 있다. 이른바 'Saying-is-Believing Effect', 즉 '말하는 것을 믿는 현상'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고, 또 어찌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것 같은데 사실 상당히 안정적으로 관찰되고 있는 현상이며 그 결과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꽤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이 시대의 리더들에게 전달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현상에 대해 알아보자. 실험 참가자들에게 어떤 사건, 현상 혹은 인물에 대한 정보를 들려준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라고 말한다. 자,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어떤 이야기든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는 일종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호응이 일어날 수도 있고,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변화되고 각색된다.
예를 들어 만약 "그 사람은 1년에 며칠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다"는 말을 처음에 했는데 청자들이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과장이 심하시네"라고 반응하면 화자는 짐짓 "그러니까 열심히 일을 한다고요. 꼭 며칠만 쉰다는 것이 아니라요"라고 다소 누그러진 내용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반대로 오히려 더 강하거나 큰 정보를 청자가 주문할 때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자가 "그날 꽤 추워서 마을의 자동차 절반이 아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고 하면 청자가 이를 되받아쳐 "말이 안 되지! 꽤 추운 정도면 그러지는 않아. 엄청나게 추워야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 아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두고 화자는 다시금 "그렇지요. 그 꽤가 보통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를 의미하는 거라니까요"라고 다시 수위를 상향 조절할 것이다. 그것이 대화니까 말이다.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내용을 전달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참가자들의 기억을 한 번 점검해 보면 놀라운 결과가 관찰된다.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당신이 전달해야 했던 원래 그 내용을 기억해 주세요." 그런데 절대다수의 경우 참가자들이 기억해낸 이야기는 자신들이 전달해야 했던 내용이 아니라 청자에게 전달하는 중간, 즉 대화 과정에서 납득시키고 이해시키고자 사용했던 그 말들을 더 분명하게 기억하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 검사를 해 보면 그 대화의 내용을 자신이 전달해야 하는 원래 내용보다도 더 확신을 가지고 기억하는 경우도 발견됐다. 즉 사람은 전달해야 하는 내용보다도 그 전달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대화 내용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긍정적인 대화의 중요성이다. 긍정적인 대화에서 나온 많은 긍정적 항목들은 실제인 것처럼 기억되기 쉬우며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더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둘째, 마찬가지의 이유로, 사실이 아닌 거짓이나 부정확한 사실이 대화가 거듭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고집되거나 반대로 인정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부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인 셋째는 명확해진다.
긍정적이고 진실된 사람들끼리는 계속 만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부정적이고 진정성이 떨어지는 사람들끼리는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전자는 긍정적 기억을 통해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겠지만 후자는 그들의 그릇된 신념이나 바람에 맞게 변질된 대화 내용을 실존하는 것처럼 스스로 인식해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믿어야 할 것을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경우 자신이 자주 대화한 것을 믿기 때문이다.
출처 : 매일경제 161223(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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