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날짜 :'11년 8월 25일
지은 사람 : 유 홍준
옮긴 사람 :
출판한 곳 : 창 비
내용 요약 : 애초에 내가 금강산 답사기를 신문에 연재할 때는 아직 금강산이 공개되기 전이어서 지난
반세기 동안 갈 수 없던 금강산을 먼저 보고 다녀온 입장에서 마치 안부를 전하듯 써내려갔던 것
이다. 그런데 나의 금강산 답사기 연재가 끝나갈 무렵 홀연히 현대금강호의 역사적 출항을 보게
되었다. ~ 중략 ~ 이미 쓴 글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로운 상황에 걸맞는 새로운 금강산 답사기를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새 글을 위해 지난 1년간 현대금강호를 타고 여느 탐승객들과 같은 조건에서 금강산을 다시
네차례 답사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금강산을 다녀왔다. 그때마다 나는 '금강산의
역사와 문화유산'이 라는 제목으로 선상(船上) 강의를 하면서 탐승객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 책 11쪽 저자의 서문에서 -
4권: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5권 :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
끄적 끄적 : "금강산에 가고 싶다 "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 금강산 찾아가자~ 1만 2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롭구나~♩ 철따라~아 고운 옷 갈아 입는 산~~~♬# 그 시절 선생님께선
이세상에서 금강산만큼 아름다운 산이 없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찬하시었고, 어린 우리는 똘
망똘망한 호기심어린 눈과 꼴까닥 침 넘어가는 음식을 생각하듯이, 천상의 아름다운 환상에 빠지
곤 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무딤인지, 삶에 적응하다보니 무디어지는 것인지, 자연스런 망각
의 한부분처럼 잊어감인지, 예전과 같지 않은 금강산에 대한 무딘 감정을 가뭄에 시들은 고추모종
에 물 주듯 정밀묘사와 같은 아름다움 표현으로 어린시절의 상상의 아름다운 나래를 펼치게한 책
이다. 금강산 곳곳의 내력과 옛얘기의 꽃을 피우듯이 써내려간 기행문은 오히려 그곳에 사는 터줏
대감보다도 더 오래 살아온 이의 얘기를 듣는 착각을 일으키게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금강산을 탐승하게 만든 책을 갖고서 금강산을 꼭 가봐야 겠다. 더 많이 보기 위해서 책을 들고~!
저자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 1~3권'을 '08년 1월에 읽었고, 지금 평범한 우리가 갈 수 없는 북한
땅 기행문 4~5권을 읽었다. 한가지 비교되는 점은...세월이 흐름에 따라 예리한 감정도 조약돌처럼
변해가는 것인지. 1~3권 답사기에 쓴 인공적인 유물?에 날카로운 비평에 끄덕이곤 했는데..4~5권
에서는 가시돋은 글은 볼 수가 없음을 세월이 흐름에 무뎌진 나의 금강산에 대한 아름다움처럼~
사물을 보는 날카로운 시각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약돌처럼 둥굴게 무뎌져가는 것일까.
내용 중에 : 현재까지 알려진 문헌기록상 가장 오래된 금강산 이름은 '삼국사기'에서 개골산 또는 상악
산이라고 한 것과 '삼국유사'에서 진표율사의 행적을 말하면서 풍악산이라고 한 것이다. 개골산은
금강산 봉우리들이 모두 뼈를 드러낸 것 같다는 뜻이고, 상악은 멧부리가 서릿발 같다는 뜻이며,
풍악은 단풍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자태에서 나온 이러한
이름들은 12, 13세기 고려중엽까지 일반화되어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과 최자(崔滋)의 '보한
집'등에서는 "풍학산은 개골산이라고도 한다"며 두 명칭을 두루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 14세기 초 최혜가 금강산을 유람하러 떠나는 한 스님
에게 준 글에서 " 세상에서는 풍악이라고 부르는 이 산을 중의 무리들은 금강산이라고 한다" 고 말
한 구절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이렇게 스님사회에서 부르던 이름이 이내 일반화되어 이제까지의
어떤 명칭보다도 대표성을 갖게 된 모양이다. - 5권 366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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