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이 나왔다고 한다. 프랑스의 발레리 줄레조라는 지리학자가 서울의 아파트 밀집을 연구한 책이다. 줄레조의 주장은 ‘서울은 아파트 때문에 하루살이 도시’라는 것이다.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한국은 아파트의 비중이 전체 주택 가운데 60%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빼면 한국의 아파트 주거 비율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주역의 건괘(乾卦)에다가 현재의 아파트 상황을 집어넣어 보면 ‘항룡유회(亢龍有悔)’가 나온다. ‘정점에 도달한 용은 후회가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내려갈 일만 있다.
그렇다면 아파트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한옥이 있다. 최근 한옥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추세도 한국인들이 아파트에 어느 정도 신물이 났다는 증표가 아닌가 싶다. 그러한 책 중의 하나인 ‘한옥에 살어리랏다’를 보니까, 한옥에 대한 문화인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있었다. 전통이 주는 격조를 유지하면서도 기능적인 편리함을 갖춘 현대 한옥들이 생각보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짓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파트와 한옥이 대별되는 요소를 생각해 보니까 여러 가지이다. 아파트는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집이다. 마치 벽돌 찍어내듯이 한 번에 수백, 수천 가구가 만들어진다. 이에 비해 한옥은 수제품이다. 한 채 한 채가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한옥은 언뜻 보기에 외형은 같지만, 내부구조를 들여다보면 똑같은 집은 하나도 없다. 아파트는 고층인 반면에 한옥은 단층이다. 고층과 단층의 차이는 흙을 접촉하면서 사느냐의 차이이다. 땅을 접촉하면 알 수 없는 안정감이 찾아든다. 풍수적으로 보면 고층 아파트보다 단층 한옥은 ‘지기(地氣)’를 많이 받는다. 젊고 건강할 때는 ‘지기’ 따위는 무시해도 좋지만, 나이 들고 몸이 약해지면 땅기운은 건강에 아주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아파트는 시멘트이고 한옥은 목재이다. 시멘트와 목재는 거주하는 사람이 느끼는 스킨십에 있어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자족감의 차이도 발생한다. 아파트에 살면 왠지 밖에 나가고 싶지만, 한옥은 하루 종일 안에만 있어도 답답함이 덜하다는 것이 한옥 체험자들의 이야기이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