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동안 ♣

닮은듯 다른 진품과 위작…핵심은 예술가의 魂

달컴이 2016. 8. 12. 22:07

 

 

 

 

 

 

 

최근 한국의 미술계는 두 위작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에서는 화가가 문제의 작품을 그린 적이 없다고 하는데도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진품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우환 화백 사건에서는 화가가 문제의 작품들을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하는데도 감정기관들은 위작으로 판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건 모두,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느냐에 따라 평가 대상인 작품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품의 가치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위작범 중 하나는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일 것이다. 그는 나치 전범 중 하나인 괴링에게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그림을 팔아 넘겼다. 종전 후 메이헤런은 네덜란드의 보물을 나치에게 팔았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자 위기에 처한 메이헤런은 재판이 진행되던 중에 붓과 물감으로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재현냄으로써 매국노에서 나치를 속인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감옥에서 자신이 소장했던 페르메이르의 수작이 사실은 위작이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괴링은 '마치 세상에서 악을 난생처음 경험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괴링 역시 메이헤런에게 위폐로 대금을 지불했다는 점이다.


왜 사람들은 예술에서 진품에 집착하는 것일까? 사실 일반적인 상품의 세계에도 모조품은 존재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상품의 세계에서도 모조품보다는 진품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상품의 세계에서 말하는 진품과 예술에서의 진품은 질적으로 다르다.

상품처럼, 예술작품도 희소성과 금전적 가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상품과는 달리 예술작품에서는 시장가치보다는 선호가치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예술작품의 높은 시장가치는 사람들의 높은 선호도 때문에 생긴 것이지, 높은 시장가치에 의해 예술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가 파생된 것은 아니다.

6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음의 심리학 실험은 예술작품의 숨겨진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실험에서는 정교한 실험 절차를 통해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이 어떤 사물이든 똑같이 복제해낼 수 있는 기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끔 만든다. 그 다음에, 첫 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아이들이 잘 알고 있는 유명인의 은(銀) 식기(은으로 된 술잔과 숟가락)를 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똑같이 은으로 만든 동일한 상품이지만 유명인이 사용한 적이 없는 제품을 복제하는 시연을 선보였다. 그 후, 아이들에게 각 물건들에 대해 값을 매겨보라고 요구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여왕이 사용하던 물건들에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설사 물건을 똑같이 복제하는 것이 가능할지라도 물건에 내재한 역사만큼은 결코 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아이들도 잘 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메이헤런의 위조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당대의 내로라하는 전문 감정가들조차도 위품과 진품을 정확하게 구분하지는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진품 작가와 위품 작가 사이에 예술적 기량의 측면에서 아무런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은 창작 활동에 헌신한 작가의 '혼'이 배어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에서는 물품 그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 안에 내재한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품에는 이런 형태의 역사성과 정신적 가치가 담겨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해서, 사람들은 상품과 예술작품을 고를 때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철학자 데니스 더턴(Denis Dutton)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인간에게서 유래한 것이며 작가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품을 진정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품 자체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작가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예술작품 속에서 발견해야 할 숨겨진 가치이며 동시에 예술에서 진품만이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다. 

                                                                                                     출처 : 매일경제 160812[고영건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