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동안 ♣

“당신의 삶, 괜찮나요”…노랫말,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다

달컴이 2015. 2. 7. 23:35







대중가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히트곡들은 당시 한국 사회 아픔과 기쁨을 노래했다. 반대로 가요가 사회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 전쟁, 산업화, 민주화로 대표되는 질곡의 근현대사를 대중가요 노랫말을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광복 전 나라 잃은 설움을 대변한 대표 히트곡은 1936년 발표된 ‘눈물 젖은 두만강’(김정구 노래·김용호 작사·이시우 작곡)이다. 가사는 이렇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떠나든 그 배는 어데로 갔소/그리운 내 님이여/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이 노래는 1935년 간도땅으로 유랑공연을 떠난 이시우 선생(1913~1975)이 국경수비대 일본 헌병이 쏜 총탄에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기구한 사연을 듣고 만든 곡이다. 눈물 젖은 두만강은 우수에 찬 멜로디와 절절한 가사가 당시 대중 마음을 파고들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밖에 ‘황성옛터’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찔레꽃’ 등도 설움의 정서를 그려 광복 전 많은 인기를 끈 가요다. 

1945년 8월 15일 이후엔 광복의 감격을 노래한 가요들이 쏟아져 나왔다. 손석룡이 노래한 ‘귀국선’(손노원 작사·이재호 작곡)은 ‘돌아오네 돌아오네/고국산천 찾아서/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이라고 했다. 1948년 장세정이 부른 히트곡 ‘울어라 은방울’(조명암 작사·김해송 작곡)은 ‘자유의 종이 울어 팔일오는 왔건만/독립의 종소리는 언제 우느냐’며 정부 수립을 염원했다. 

일제 말기에 나왔던 가요가 광복을 맞아 가사를 고쳐 새롭게 불리는 것도 많았다. 중일전쟁 때 나온 행진곡풍 노래 ‘감격시대’(1939년)와 ‘꽃마차’(1939년) 가사엔 광복의 기쁨이 반영됐고, 일제 국책 영화 주제가였던 ‘복지만리’(1941년)엔 고구려 기상과 독립을 염원하는 가사가 삽입됐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나선 전쟁의 참혹함과 실향·이산의 아픔을 노래한 가요가 많았다.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1953년·박시춘 작곡·강사랑 작사)는 1950년 민간인 10만명을 피난시킨 ‘흥남철수작전’의 혼란 속에서 생이별을 한 금순이를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한 화자가 애타게 찾는 내용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당시 국민가요로 불릴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최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에 삽입곡으로 쓰이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남인수가 부른 ‘이별의 부산정거장’(1954년·박시춘 작곡·호동아 작사)은 휴전으로 총성이 멎자 하나둘씩 고향을 찾아 떠나는 기쁨과 설움을 노래한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이별의 부산정거장.’ 

전쟁 후 재건에 열중한 1960년대엔 빠른 템포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래가 큰 인기를 끌었다. 대표곡은 한명숙이 부른 ‘노란샤쓰의 사나이’(1961년·손석우 작사작곡)다. 노래 화자는 ‘노란샤쓰 입은 말 없는 그 사람이/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라고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이전까지 여성 화자가 사랑 표현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당시로선 생소한 미국 컨트리송풍 멜로디를 차용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1969년 패티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길옥윤 작사작곡)는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라고 노래한다. 비관·우울에 빠져 있던 전쟁 직후 정서와는 확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1970년대는 정부 주도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시기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주도로 1970년 범국민적 지역사회 개발 프로젝트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작사·작곡한 새마을노래는 지금까지도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유명한 가요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1970년대엔 박정희 정권의 규제로 금지곡으로 묶인 노래가 많았다. 송창식 노래 ‘고래사냥’(1971년)과 ‘왜 불러’(1975년)가 대표적이다. 각각 ‘불순한 내용을 연상시킨다’ ‘반항적인 정서를 일으킨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부 의도와는 반대로 이들 노래는 청년들 사이에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1980년대 포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소설가 황석영 등 10여 명이 희생자들 ‘넋풀이’ 노래극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 이때 만들어진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지금도 민주화·노동운동 진영에서 애국가처럼 불린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마라…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이 밖에 양희은 노래 ‘아침이슬’ 등도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자주 불렸다. 1983년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김재일 작곡·박건호 작사)은 정부가 권장한 ‘건전가요’ 중 이례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한 인기곡이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라는 가사처럼 대다수 국민은 경제 성장 과실을 모두가 향유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반면 1991년 조용필 노래 ‘꿈’은 산업화·도시화 이면을 노래한 곡이다. 노래 속 화자는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뜨거운 눈물을 먹는다’라고 말한다. 이 노래는 그리운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든 베이비붐 세대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엔 산업화와 민주화 혜택을 동시에 입은 ‘X세대(1980년대 전후 출생)’가 당대 소비문화를 이끌었다. 히트곡 노랫말도 기존 가요처럼 사회 분위기보다는 사랑 이별 등 개인 감정을 더 많이 강조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젠 다른 친구들처럼/맘에 드는 누군가를 사귀어보고 싶어’라고 노래하는 1993년 공일오비 ‘신인류의 사랑’(정석원 작사작곡)이 이 시기 대표 히트곡이다. 비슷한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주목을 받았다.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족해…이 시꺼먼 교실에서만/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1994년 교실이데아) ‘아직 우린 젊기에/괜찮은 미래가 있기에/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을 닦고/컴백홈’(1995년 컴백홈) 같은 가사는 당대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대중가요 노랫말은 과거에 비해 원초적이고 직설적으로 바뀌었다. 김진우 서울예술전문학교 교수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인기 대중가요 가사를 분석한 결과 상대방 호칭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1960년대엔 ‘사람’이란 단어를, 1970년대엔 ‘그대’와 ‘너’, 1980년대엔 ‘당신’, 1990~2000년대엔 ‘너’ 혹은 ‘니’라는 표현을 많이 쓴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가사엔 ‘서글프다’ 같은 서정적인 표현이 많았지만 요즘 가사는 원초적이고 직설적인 어휘가 압도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2000년대 들어 영어 가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도시화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노래 배경이 되는 무대가 더욱 다양해졌다.

1970년대엔 서울 명동(전영 ‘서울야곡’, 배호 ‘비 내리는 명동거리’), 1980년대 강남(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나훈아 ‘영동부르스’) 정도만 집중 조명됐다. 1990년대 이후엔 △신촌(포스트맨 ‘신촌을 못 가’) △광화문(동물원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이문세 ‘광화문 연가’) 등은 물론 △이태원(UV ‘이태원프리덤’) △홍대(윤건 ‘홍대 앞에 눈이 내리면’) △북촌 일대(십센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등이 언급되고 있다. 최근엔 △부산 해운대(바이브 ‘해운대’) △전남 여수(버스커버스커 ‘여수밤바다’) 등이 대중가요 인기 덕분에 ‘청춘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출처 : 매일경제(이기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