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의샘 ♣

극한상황의 리더십 ( 윤호일 남극대장의 이야기 )

달컴이 2011. 6. 19. 22:05

 

공포가 무서운 이유

남극기지의 아르헨티나 대원들이 귀환 도중에 폭풍설을 만났어요. 폭풍설이 오면 전진하면 안 돼요. 이게 원칙이고 기본이에요. 아르헨티나 대장은 대원들에게 전진 명령을 내렸어요. 서두르면 따뜻한 난로와 밥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런 작은 생각에 기본을 잊은 거예요. 조직을 이끈다는 책임을 망각한 거예요. 그러다 두 명이 크레바스에 빠졌어요. 악어 이빨처럼 울퉁불퉁한 V자 골짜기로 150m를 떨어졌어요. 한 명은 즉사하고 한 명은 살았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요. 살아난 카를로스는 자기 발에 찬 아이젠과 즉사한 동료의 아이젠을 풀어서 팔뚝에 묶었어요. 올라가기 위해. 찍으면서 올라가다가 미끄러지고, 올라가다가 미끄러지고. 카를로스는 7시간 만에 숨졌어요. 아마추어도 버티는 시간이에요. 특수부대 출신이. 어둠과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끝없이 오르다 체력이 고갈돼 다운된 거예요.

카를로스는 크레바스에서 최소 48시간을 버틸 수 있었어요. 죽은 동료의 옷은 젖지 않았어요. 동료의 배낭엔 식량도 있었어요. 본인의 체온과 식량이 떨어지면 그걸 사용하면 됐어요. 버티면서 교신을 시도할 수 있었어요. 공포를 받아들이면 됐어요. 하지만 그는 ‘당장 올라가지 못하면 죽는다’는 공포에 밀렸어요. 그게 그를 패배시킨 거예요. 패배의식이 그를 죽인 거예요. 공포가 무서운 것은 1보(步) 전진을 막기 때문이 아니에요. (살 수 있는) 현재 위치마저 갉아먹기 때문이에요.

허약한 사람은 위기 때 두려워해요. 짜증을 내요. 내 잘못이 아니라며 외면해요. 그런다고 내 앞에 있던 위기가 절로 나간 적 있습니까? 계속 내 앞에서 깔짝거려요. 절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나가질 않아요. 위기를 함께 하는 법을 배울 때 결국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예요.

조직을 망치는 낙관론

조난당한 우리 부대장은 눈보라 속에서 죽을 힘을 다해서 유빙(流氷·물 위를 떠다니는 빙하)을 헤쳤어요. 시동을 걸고 바다 얼음을 꾹꾹 눌러대면서 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유빙의 힘은 고무보트를 뚫었어요. 더 전진하면 침몰이죠. 결국 유빙을 피해요. 그러면 수심 5000m의 남극해로 흘러가요. 펑크난 고무보트, 바닥난 연료통을 가지고. 흘러가면 죽음이에요. 집채만한 파도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빙하 위로 몸을 던진 거예요. 식량도 없었어요. 온몸이 젖었어요. 추위와 싸우던 어린 부하 두 명은 너무 견디기 어려웠어요. 처음 당해본 조난이었어요. 리더에게 물을 수밖에 없어요. “언제 구조대가 옵니까?”

이럴 때 리더는 일단 조직원을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해요. 낙관적으로 얘기해요. “아무것도 아니다. 금방 날씨 좋아진다. 힘을 내자.” 어린 부하는 따르죠. 그렇게 다시 24시간을 버텨요. 그리고 다시 물어요? “언제 구조됩니까?” 리더는 12시간이 지났을 때 “곧 좋아진다”고 해요. 그래서 희망을 갖고 리더에게 의지해요. 그런데 24시간이 지나도 바람은 똑같이 오는 거예요. 다시 물어요. 리더는 바로 앞의 위기만 모면하려고 “조금만 더 참자”고 말해요. 일단 따르죠. 그러다 48시간이 지나요. 인간의 한계 지점이지요. 부하들은 견디기 어려운 공포예요. 포기하고 싶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리더에게 묻고 싶어요. 리더밖에 없으니까. 이때 리더가 “몇 시간만 더 참으면 된다”고 설득하면 부하들이 견딜까요? 아니죠. 이때부터는 말이 통하지 않아요.

문명사회 리더는 위기의 순간에 답을 몰라요. 그래서 낙관론으로 바로 앞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해요. 조직원에게 낙관론만 입력을 시키면 마지막에 되돌릴 수 없어요. 각자 길을 떠나요. 조직이 무너지는 순간이에요. 위기일수록 최악으로 빨리 내려가야 해요. 서성거리면 늦어져요. 가장 밑바닥에서, 최악의 기준에서 정신력을 회복해야 해요. 일본 정부는 원전을 살리기 위해 바로 앞에 있는 위기만 팠어요. 또 위기가 닥쳐요. 최악의 위기까지 갔을 때 이제 아무도 믿지를 않아요.

조직을 움직이는 힘

부대장은 알았어요. 빙하 위로 내리자마자 말했어요. “잘 들어라. 남극에 눈보라가 한 번 불면 최소 만 3일 간다. 그전에 그친 적은 없다. 우리가 살려면 만 3일은 기본적으로 버텨야 한다. 다른 나라 대원들도 수년 전에 탐사활동을 벌이다가 조난을 당했다. 만 3일 이상을 다 참았다. 다 살아났다.” 사실 만 2일이면 다 끝나요. 최악의 기준을 제시해서 동기부여를 한 거예요. 3일 동안 무조건 버티게끔. 이들은 “3일은 기본이래. 다 버텼고 다 살아났대”라고 자기 동기를 부여했어요. 12시간 지났을 때 대원들은 두려웠어요. “그래도 3일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 중국놈들도 살았는데 나라고 왜 못 살아.” 다시 동기를 부여했어요. 스스로 움직인 거예요. 다 무너진 조직을 살린 건 완장이 아니었어요. 능력도 아니었어요. 동기를 부여해 그들을 움직였기 때문이에요. 그게 리더십이에요.

함께 조난당했다가 살아남은 구조대원도 마찬가지예요. 보트가 기우뚱하는 순간에 ‘이건 뒤집힌다’고 느꼈어요. 위기를 받아들인 거죠. 얼음 파도를 정면으로 보지 마라. 이게 철칙이에요. 정면으로 보면 시멘트 콘크리트 반죽이 영원히 밀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져요. 대원들은 몸을 틀었어요. 수없이 연습했거든요. 파도가 오면 숨을 안 쉬고, 골이 오면 숨을 쉬고. 그렇게 떠 있으면 바람 때문에 연안에 닿을 수 있어요. 위기의 본질이 몸에 배 있느냐에 따라 조직의 운명이 달라져요.

정직·균형감각·인간미

위기 때 조직을 움직이는 리더십? 다른 거 없어요. 정직이에요. 제 경험이 있어요. 크레바스 탐사를 나갔을 때 제 결정으로 몰살당할 뻔한 상황이 있어요. 대원들은 대장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대장이 사과하기를 바랐어요. 저는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날 저녁 부대장이 “대장님, 간접적으로라도 사과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1년을 더 지내야 합니다”고 했어요. 저는 완장에 기대서 반대했어요. 항변했어요. “나는 가이드라인에 따랐다. 그들이 오버했다. 너희가 잘못했다”라고. 다음날부터 모든 리더십이 부대장에게 넘어갔어요. 아무 힘을 쓸 수 없었어요. 나는 완장만 차고 있었지.

조직엔 늘 모자란 사람이 있어요. 이들을 잘라버리고 강한 대원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게 리더십이 아니에요. 뒤처진 자를 자르면 또 뒤처진 자가 나와요. 그럼 또 자르고 계속 잘라요. 그러면 마지막에 나를 지켜줄 부하는 없어요. 리더십은 뒤처진 자가 일어설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마련해 주는 균형감각이에요.

마지막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리더십이 필요했어요. 위기에서 조직을 움직이려면 “우리 리더는 성질도 더럽고, 실력도 없어. 그런데 위기엔 자기를 희생해서 조직을 살리고 우리를 위할 사람 같아”라는 이미지가 필요해요.

남극기지엔 원칙이 있어요. 크레바스에 빠진 동료를 위해 생명선을 잡고 있어도 4~5시간 후 하반신 마비(동사 위기)가 오면 생명선을 끊고 기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내가 빠지면 우리 대장님은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생명선을 끊지 않을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야 해요. 그게 리더예요. 그래야 모든 조직이 무너지는 위기의 순간에서도 우리 조직만은 끝까지 살아남아 혁신의 길, 창조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요.

                                                                                                                               출처 : 조선일보 110618 (금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