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人文學 리포트] 최고의 스승은 말없이 가르친다
작가 카바노프(Brian Cavanaugh)는 스승의 역할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청년이 오랫동안 보석 감정사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보석 감정 분야 대가(大家)를 찾아가 자신을 제자로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대가는 곧바로 그 부탁을 거절한다. 보석 감정 기술을 배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끈기와 인내심인데, 청년이 그러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가 불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청년은 단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달라며 매달렸다. 자신은 어려서부터 보석 감정사가 되는 것을 꿈꿔왔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며 대가를 설득했다. 마침내 그는 청년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일부터 여기에 나오도록 하게."
다음날 아침에 청년이 찾아가자 보석 감정 대가는 젊은이에게 작은 의자를 하나 내어주며 "거기에 앉아 있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청년 손바닥에 작은 보석 하나를 주면서, 절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지시했다. 청년이 의자에 앉아 보석을 쳐다보는 동안 대가는 보석들 무게를 달기도 하고 또 자르기도 하면서 자기 일을 계속 하였다. 청년은 긴장한 상태에서 조용히 앉아서 기다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에도 대가는 청년에게 보석을 내어주고는 의자에 앉으라고 지시했다. 셋째날에도, 넷째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뭔가 가르쳐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침에 대가를 찾아가면 언제나 그는 똑같은 지시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청년은 손에 보석을 쥐고 앉아 있기는 했지만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가에게 "선생님, 저는 언제쯤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배울 수 있습니까?"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보석 감정 대가는 "곧 배우게 될 거야"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자기 일을 계속했다.
마침내 열흘째 되는 날 아침에 보석 감정 대가가 그날도 똑같은 보석을 쥐여 주며 의자에 앉으라고 지시하자 청년은 화가 나서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데리고 장난을 할 작정인가요?"라고 외치며 보석을 집어던지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어, 이 보석은 어제 봤던 그 보석이 아니잖아!"그러자 보석 감정 대가는 웃으며 "이제야 눈을 뜨게 되었군"이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지식이 존재한다. 한 유형에서는 스승 없이 학생 스스로 독학하는 것이 가능하다. 바로 백과사전적 지식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에 세상에는 단순히 책을 통해서는 전해질 수 없는 지식도 존재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암묵적인 지식(암묵지·tacit knowledge)`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지식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길잡이 노릇을 하는 스승의 가르침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세계에서 학생은 비록 배우고자하는 열망을 갖고 있더라도 정작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거장, 조지 스터트(George Sturt)는 암묵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스승이 왜 필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숙련된 장인은 결심 판사 같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무는 대패나 도끼 아래에서 그 이전까지는 전혀 나타내지 않던 성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장인은 이러한 점을 손에서 전달되는 느낌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이러한 것을 말이나 글자를 통해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채찍처럼 질긴 톱밥`과 `당근처럼 쐐기꼴을 한 톱밥`의 차이 그리고 `썩은 느낌`과 `푸석푸석한 느낌`의 차이를 어떻게 말로 가르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이처럼 말이나 글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며 이처럼 책에 담을 수 없는 지혜야말로 정말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스승의 인도 아래 그러한 살아 있는 삶의 지혜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 최고의 스승은 말없이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매일경제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